top of page

로카보어: 인도네시아를 식탁 위에 올리다

많은 레스토랑이 ‘지역 식재료’, ‘로컬 요리 문화’를 자신의 철학으로 내세우지만 로카보어만큼 극단적이며 미친 열정으로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곳은 전 세계에 몇 군데 없다. 유럽에 노마, 남미에 센트럴이 있다면 아시아에는 로카보어가 있지 않을까?




위에 말한 것과 같다. 노마나 블루힐, 센트럴을 예로 든 것처럼, 이것은 지역의 오랜 로컬 요리를 베이스로 한 곳은 아니다. 오히려 식재료가 이끄는 레스토랑에 가깝다. Eelke Plasmeijer와 Ray Adriansyah의 로카보어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이 아니라, 우붓이나 자바 섬의 정글에서 찾은 특이한 열매 같은 것을 과연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맛있게 즐길 수 있는지 새롭게 연구하고, 다양한 요리법을 적용하는 이노베이티브한 실험실에 가깝다. 한국으로 치면 맛있는 청국장을 셰프들이 모던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북악산에 많이 있는 야생 식물 중에 먹을 만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드는, ‘세상에 없던 요리’ 같은 걸 만드는 곳이랄까. 아무래도 그렇다 보니 단순히 ‘이곳의 요리가 발리에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나?’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복잡해진다. 대부분 제일 맛있고 익숙한 것들은, 보통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고 발전시켜 온 전통 요리에 더욱 가까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의 시도가 너무 흥미로워서, 꼭 한 번 경험해볼만한 다이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 맛도 좋다!)





로카보어 풀패키지 투어 (Locavore NXT Full Experience)를 신청했기에, 우드룸에 체크인한 뒤 레스토랑 투어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다. 3시간짜리 다이닝을 위해 옷도 갈아입고, 다시 레스토랑을 찾았다. 객실에서 레스토랑까지는 약 5분정도 걸어야 하는데, 왓츠앱으로 ‘디너 갈 준비가 되었다’라고 알리면 직원이 와서 에스코트를 도와준다.



처음 입장한 곳은 리셉션 홀이자 증류소가 있는 공간이다. 커다란 천고가 시원한 느낌을 자아내고, 통창으로 초록빛이 가득한 우붓의 쌀 논이 내다보인다. 이곳에서 웰컴 드링크와 함께 두 가지 바이트 메뉴가 서빙된다. 웰컴 드링크는 알코올이 있거나 없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증류소에서 큰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알코올 드링크로 요청했다.




처음 요리의 이름은 “바나나 나무 전체”. 바나나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부분을 모두 활용한 요리다. 인도네시아에는 로컬 바나나 품종만 수백가지라고 한다. 그 중, 잘 익은 레이디핑거 바나나 품종의 과실과 바나나 줄기 샐러드, 바나나를 발효시켜 만든 바나나 식초에 인도네시아식 레드 커리 소스를 더했다. 이 스낵은 바나나의 열매, 껍질, 줄기, 잎으로 만들었는데, 많은 메뉴가 바뀌는 동안에도 오랫동안 메뉴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식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레스토랑의 철학을 표현하기도 하고, 셰프들이 이 요리의 맛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이 작은 스낵을 먹으며 공간을 둘러보면, 주류가 제공되는 바 뒷편으로 무려 실내에(!) 바나나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이 공간을 모티프로 삼아, 셰프 팀은 지금까지 19가지 다른 품종의 바나나를 요리에 사용해 보았고 결국 최종적으로 이 메뉴를 완성했다고 한다. 바나나의 과일은 퓌레로 사용하고 껍질은 조미료를 만드는 데 활용하며 줄기는 카레를 섞어 샐러드로 이용했다.



두번째 스낵은 약간 빡빡하면서 쫀득한 느낌이 있는 카사바 빵이었다. 여기에 개구리 다리살을 가늘고 길게 찢어 요리해 올렸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지역 요리인 시렝(cireng)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이기도 하다. 로카보어는 유제품이나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데, 그래서 여러 해에 걸쳐 다양한 재료로 글루텐이 없는 빵을 많이 개발해 왔다. 음료와 함께 즐기기에 좋았다.




다음으로는 커다란 문을 지나 지하로 내려간다. 깜깜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서버가 후레시를 비춰 주는데, 내려가는 길에서 흥미로운 향이 가득하다. 앞서 레스토랑 투어에서 버섯 종균을 만드는 연구실에 갔었는데, 이번에는 버섯을 배양하는 배양실이 100여평에 가깝게 조성되어 있다. 붉은 빛이 가득한 버섯 배양실의 습기와 독특한 향은 새로운 감각을 자극한다.


벽에는 현대적인 터치 패널이 붙어있는데, 이곳에서 레스토랑 팀이 연구하고 아카이빙한 다양한 식재료를 눌러 볼 수 있다. 3D로 정말 잘 구현되어 있어서 여러가지 재료를 탐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작은 개구리 사육장 같은 유리장으로 안내되는데, 바로 여기에 우리가 먹을 다음 스낵이 준비되어 있었다. 버섯 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버섯으로 만들어진 두 가지 스낵이 나온다는 것이 흥미롭다. 첫 번째 버섯 바이트는, 로카보어에서 생산하는 모든 버섯을 블렌딩한 재료로 만들어 옥수수 칩 위에 올렸는데, 한 입에 먹으면 감칠맛과 아로마가 가득 퍼진다.



그리고 자연의 돌멩이처럼 생간 자리에 앉으면 특이하게 생긴 컵에 담긴 버섯 브로스가 나온다. 컵은 로컬 도예가가 만든 것으로, 투박하게 돌을 깎아 만든 것처럼 생겼다. 안에 담긴 버섯 브로스는 굉장히 농도가 진하고, 감칠맛이 강하며 입에 여운을 남긴다.



메인 다이닝 홀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 세 번째 공간인 메인 다이닝 홀로 이동해 자리에 앉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레스토랑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을 보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두 명의 고객이 오면 서로 마주보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서는 주방쪽을 바라볼 수 있게 앉도록 안내받는 것이 재미있다. 메인 홀은 논이 보이는 거대한 통유리창이 있는데, 어둠이 깔리면 밖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홀의 중심을 차지하는 전면 개방형 주방에서는 단 하나의 사각지대도 없이 모든 요리사들이 ‘보이는 공간’에서 요리를 만든다.



이미 스낵을 통해 경험했지만, Locavore NXT의 요리 스타일은 매우 독특해서 특정한 단어로 정이하기 어렵다. 현대적인 유럽 요리 기술을 사용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농부, 어부 및 지역 생산자를 돋보이게 만드는 독창적인 요리들이다.


우리는 각각 알코올, 논알콜 페어링을 모두 경험했다.




첫 요리는 ‘세비체’. 타마린드를 주 재료로 한 세비체 소스 (Leche de Tigre)와 락토 발효 토마토, 야자열매와 레몬그라스 오일, 맑은 토마토 젤리와 해조류 튀김이 올라간다. 바다의 풍미와 과실의 느낌이 결합된 이 요리는, 세비체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흰살 생선 같은 해산물을 사용하지 않고, 해조류 튀김으로 풍미를 더했다.





다음 요리는 차요테. 차요테가 뭐더라? 하고 찾아보니, 열대 지역의 열매로 멕시코 호박이라고도 불린다. 원산지는 남미이지만 기후가 유사한 동남아에서도 많이 재배된다고. 앞서 바나나 스낵이 그랬듯, 이 차요테 요리도 잎, 새싹, 꽃, 과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한다. 캄풍(Kampung)이라는 지역 토종닭의 달걀 노른자를 큐어한 뒤 올리고, 그 위에 개미알을 함께 올려 낸다. 개미알은 가끔 태국이나 동남아에 가면 먹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개미를 먹고 싶지는 않지만 식재료는 경험하고 싶어서 다른 접시에 따로 분리해 내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예쁘게 개미알을 데코레이션 해 주었다. 맛과 식감은 소금기를 뺀 데친 새우젓 같다.





그리고 템페 요리. 한국의 비건 식단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먹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콩 발효 식품인 템페는 바나나잎에 싸서 발효하며 만든다. 레스토랑의 발효 책임자인 리사와 팀이 여러 버전의 템페를 만들었는데, 카나륨 견과류와 검은콩을 조합한 것이 가장 인기가 있어 메뉴가 되었다. 흑마늘과 버섯, 캐슈밀크와 템페를 넣고 만든 이 요리는 발효한 콩에서 연상되는 쿰쿰함은 전혀 없다. 다만 혀 끝에 굉장히 강렬하게 남는 탄닌감이 생전 처음 느끼는 독특한 느낌이다. 이건 템페 자체의 특징이라기보다는 로카보어 요리의 맛이다.





랍스터 요리. 부드럽게 요리한 랍스터 몸통살과, 랍스터 비스큐 소스가 함께 준비된다. 여기에 로카보어의 색을 더하기 위해 야자로 만든 김치와 구운 파인애플이 들어가는데, 정말 김치 맛이 나서 재미있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위에는 레몬그라스 폼이 올라가 요리에 복합미를 더한다. 그리고 홀 중앙에 있는 오픈 키친으로 가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커다란 키친 한켠에 마련된 자리에서 셰프 Ray와 식사 중간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우드룸 옆에 가득 피어있던 커다란 마리골드 꽃과 파파야 줄기를 이용한 음료를 맛보았다.





자리로 돌아가 다시 코스가 이어진다. 오리 다리 미트볼은 커다란 꽃다발 위에 플레이팅되는데, 이 미트볼에는 무려 37가지 식재료가 들어간다고! 오리 다리로 만든 미트볼에는 인도네시아의 몰레 소스 (아무래도 연구 키친 책임자가 멕시코 셰프이다 보니, 이렇게 경계 없이 퀴진이 확장된다)를 곁들이고, 파파야 꽃 샐러드와 크리미한 육수를 함께 낸다.





다음 요리는 ‘전복과 무’. 로컬 꽃게로 맑은 육수를 내고, 부드럽게 익힌 무에 전복을 올려 낸다. 여기에 아시아 사람들의 공통적인 관심사! 메인! 밥 요리다. 로카보어 팀이 이 요리에 대해 설명하며 정말로 땅의 기운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설명에 이해가 됐다. 노란 타마린드를 넣어 예쁘게 색을 낸 밥과 오징어, 김치, 게살을 올려 먹으니.. 분명 생전 처음 먹는 음식인데 김치 볶음밥 같은 맛이 나기도 하고. 맛있고 재밌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요리였다.




그리고 7일간 숙성한 요리와 적양배추, 하우스 메이드 미소 소스. 7일간 숙성한 오리에 마늘 대를 넣어 향을 입히며 볶은 오리 가슴살과 쥬 소스를 함께 낸다. 고사리를 닮은, 로컬 양치식물이 나오는데 식감과 맛이 좋았다. 적양배추의 보랏빛과 과일을 함께 섞은 부드러운 소스도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맛.




서양 요리에서는 입가심이 소르베 같은 형태로 제공되지만, 여기서는 발리 우롱차로 메인 코스와 디저트 사이 순서를 이어준다. 유기농 발리 우롱차와 함께, 찻잎을 절여 만든 새콤한 스낵이 함께 나온다. 알코올이 살짝 섞인 고구마 발효 누룩과 새콤한 우롱차 피클, 로컬 꽃이 함께 나오는 프리 디저트는 깔끔한 차와 함께 즐기기에 제격.



그리고 다시 바나나로! 사실 디저트는 앞서 웰컴 드링크를 즐겼던 곳으로 돌아가 천천히 맛볼 수도 있고, 계속 메인 다이닝 홀에서 먹을 수도 있는데 나는 밤 비행기 일정이 있어서 그냥 빠르게 메인 홀에서 식사를 이어갔다. 만약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네 번째 자리로 이동을 해서 깜깜해진 바 공간의 무드를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수미상관처럼, 메인 디저트는 바나나 초콜릿과 알리만 고추. 초콜릿과 바나나는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한 디저트 조합이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바나나 껍질로 꽁포트를 만들고, 바나나 몰레 소스와 젤리, 알리만 고추 아이스크림을 더했다. 매콤달콤 쌉싸름함이 가득한 복합적인 디저트!



정말 마지막! 함께 할 커피와 차, 핫 초콜릿을 고를 수 있는데 도대체 핫 초콜릿은 다이닝을 끝나고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핫 초콜릿을 시켰다. 당연히 핫 초콜릿도 범상치 않다. 마치 걸쭉한 콩물을 먹는 것처럼 (그런데 맛이 카카오닙스 맛)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달콤하고, 그렇지만 깔끔하다. 워낙 질감이 진해서 아주 작은 컵에 나왔는데도 양이 굉장히 많게 느껴졌다. 한 입씩 홀짝홀짝 해도 둘이 먹기에 충분하다.



그 초콜릿을 먹는 동안 소르베가 나왔다. 메뉴판에는 ‘제철 과일’이라고 적혀 있어서, 스시 오마카세에서처럼 맛있게 익은 과일 플래터 같은 게 나오나 싶었는데, 예상이 틀렸다. 앞서 차요테 요리에 사용하고 남은, 천천히 캐러멜라이즈한 수박의 나머지 부분을 갈아 소르베로 만들었다. 스파이시한 타마릴로로 만든 멕시코 스타일 소스가 올려져 있어 흥미로웠다.




끝난 줄 알았지만 이 식사는 거의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마치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다녀갈 때처럼, 레스토랑의 출구는 기념품샵!!!으로 이어진다. 로컬 공예가들의 도자기나 유리 공예품, 가죽, 직물 공예를 구매할 수 있는 곳. 재미있는 볼거리들이 많았는데, 잠깐, 여기에도 숨은 메뉴가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 초콜릿 봉봉! 서랍을 여니, 4가지 독창적인 플레이버를 넣은 초콜릿이 나온다. 배가 너무나 불렀지만 언제 또 로카보어에서 이렇게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4가지를 모두 요청했다.





도대체 어떤 셰프들이

이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공동 오너 셰프인 Ray Adriansyah는 자카르타에서 수마트라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훌륭한 요리사였던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며 전통적인 요리와 현대적인 요리에 모두 관심을 가지며 성장했다. 뉴질랜드에서 경영을 공부하던 중, 셰프의 꿈을 쫓기로 결정하고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요리학교를 졸업한 후 자카르타로 돌아왔다. 자카르타에 있는 도심 레스토랑에서 Eelke 셰프 아래로 들어가 Sous Chef까지 성장하며,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Ray 셰프와 오랜 인연을 이어 온 Elke Plasmeijer는 네덜란드인이다. 14살부터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호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등 다양한 경력을 통해 성장했다. 거의 20여년 전, 2006년, 선배가 일하고 있던 자카르타에 방문했다가 총괄 셰프 자리를 제안받고 일하기 시작한 것이 인도네시아와의 인연이 되었다. 그러던 중 Ray를 만났고, 발리로 가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최대한 로컬 재료를 사용하는 데 전념했지만, 둘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이상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둘만의 레스토랑을 창업하기로 생각했고, 지역의 식재료’만’을 고집하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 가고 있다.


또 한번 새롭게 이전한 이 공간에서, 두 셰프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 우리는 공동체와 발리,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식당이 되고 싶어요. 이제 우리가 항상 원했던 모든 시설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더 많은 것을 하고 더 잘 해야 한다는 한계를 항상 느꼈지만 이제는 그 한계가 사라졌고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하고, 영감을 주고, 해결책과 대안의 실마리를 제안하는 것. ‘뭐 저렇게 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반항적이고 혁명적인 음식 여행지. 여러분도 로카보어에 꼭 방문해 보시기를!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