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보어에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미친 레스토랑’이라고 할 때에도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발리에서 단 한 곳의 레스토랑을 간다면, 고민의 여지 없이 바로 이곳. 로카보어를 추천한다. 음식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아주 특별한 레스토랑.
레스토랑에 도착해 8시간동안 쉬지 않고 감탄이 나왔다. 이곳에서 경작하는 작물, 실험실 같은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버섯 농장, 그리고 옥상 정원, 커피 테이스팅, 온전한 경험을 제공하는 로카보어의 나무 별장, 그리고 3시간에 이르는 식사까지 바쁜 시간이 이어졌다. 2년 전, 발리 우붓의 중심가에 있던 레스토랑 Locavore가 훨씬 확장된 규모의 Locavore NXT로 새단장해 오픈한 뒤 더 본격적인 미식 여정을 시작했다. 이곳은 엘케 플라즈메이저(Eelke Plasmeijer)와 레이 아드리아니야(Ray Adriiansyah) 두 셰프가 공동으로 이끄는 레스토랑으로, 로컬 식재료를 새롭게 발굴하고 탐구하며 유례 없는 다이닝 경험을 만든다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탐구심이 강하다면 하루동안 로카보어의 Woodrooms에 숙박하며 ‘로카보어 풀패키지 경험’을 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도대체 뭐하러 레스토랑에서 하룻밤 잠까지 자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레스토랑의 크기만 해도, (앞의 논밭을 제외하고) 2500평이 넘는 로카보어에서 일하는 100여명의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떤 연구를 하며,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를 얼마나 독보적인 특별함으로 재창조하는지 꼭 경험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Wood Room
로카보어의 우드룸
2인이 숙박 가능한 이 우드룸은 로카보어에서 준비한 아침식사와,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로카보어 레스토랑 투어를 포함해 하룻밤에 28만원 내외다. 레스토랑 투어는 개인적으로 일정에 따라 체크인 하는 날 오후에 진행할 수도 있고, 이튿날 오전에 진행할 수도 있으니 미리 문의해볼 것.
우드룸은 로카보어 레스토랑과 바로 맞닿은, 300m 정도 거리에 있다. 발리의 쌀농사 밭의 풍경이 한적하고 조용하게 펼쳐지고, 개별 테라스가 딸려 있다. 테라스에 있는 나무 테이블에서 로카보어의 웰컴 드링크와 스낵을 즐길 수도 있는데, 이곳에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나 또한 그전까지 1박에 최소 200만원이 넘는 럭셔리 리조트의 풀빌라에 7일간 묵다 온 상황이었지만 수영장 없이도 너무나 충분한 아름다움에 해질녘의 노을을 바라보며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려 1/10 가격인 이곳이 얼마나 가성비 넘치는지!) 다만, 바로 논밭과 연결된 곳이다 보니 모기가 있다. 모기 기피제는 필수. 발리를 비롯한 동남아 여행을 할 때는 꼭 모기기피제와 선크림은 챙겨야 하니까, 모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하고 기피제를 챙기기 바란다.
룸 또한 아주 쾌적하다. 객실은 지어진지 고작 1년 남짓하고, 관리 상태도 아주 좋다. 원목과 화이트 톤으로 미니멀하면서도, 레스토랑의 디자인 팀에서 직접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어 활기를 더한다. 룸에는 로카보어에서 직접 엄선한 인도네시아의 지역 커피 원두로 콜드브류한 커피 원액이 냉장고 안에 제공된다. 미니바에도 시판 스낵이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매일 새롭게 구워내는 칩과 주전부리가 제공되는데 꼭 맛보기를. 커피는 얼음과 함께 시원하게 마시며 스낵과 함께 즐기기에도 좋고, 여행 마지막 날이라면 잘 밀봉된 콜드브루 원액을 집으로 가져오는 짐에 챙겨서 며칠간 아침마다 로카보어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해도 좋다.
Locavore NXT Full Experience
로카보어 풀패키지 경험
자. 이 글을 읽는 진지한 미식가들이라면 레스토랑에 가서 얼마나 많은 ‘키친 투어’를 했을지 안다. 레스토랑 직원의 안내에 따라 커다랗고 멋진 주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간 곳에서, “이곳은 차가운 요리를 준비하는 섹션이고, 여기는 핫 파트이고…” 등의 설명을 들으며 음식이 만들어지는 실제 공간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레스토랑에서 하룻동안 잠까지 자며 풀패키지 투어를 한다고 할 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로카보어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물론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나, 페루 리마의 센트럴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레스토랑이 하나의 연구소와 다를 바 없고 볼거리가 정말 많다는 점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는 ‘아시아의 노마’ 같은 곳이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주방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철학과 연구 내용들을 볼 수 있는 2시간까리 꽉 찬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항공 일정 때문에, (원래는 이튿날에 진행될) 투어를 체크인 하자마자 바로 오후에 진행했다. 다음날 서프라이즈로 알게 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저녁 식사를 먹기 전 레스토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먹으니 더 많은 부분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출발은 ‘커핑(cupping)’부터. 인도네시아가 전 세계에서 4번째 규모의 커피 생산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많이 생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국 생산량 대비 소비량은 세계 최고다. 즉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커피를 엄청나게 생산하고 마신다는 것! 대부분은 로부스타를 생산했고, 설탕을 많이 넣은 소위 ‘옛날 커피’를 마셔 왔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아라비카 품종 생산량도 늘어나고, 스페셜티 커피 원두를 베이스로 한 드립커피나 에스프레소 메뉴도 점점 많이 마시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중 인도네시아 출신이 많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도 인상깊었다. (말레이시아 출장을 갔을 때에도, 자신들의 커피 문화와 뛰어난 바리스타 – 전문인들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기억에 남았는데, 여기도 비슷하다.)
우리는 네 가지 종류의 커핑을 진행했다. 커핑은 원두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거나 구매를 진행할 때 빠지지 않는 부분인데, 이곳에서는 자신들이 이미 선별한 4가지 원두에 대한 비교 커핑을 통해 ‘얼마나 커피의 항과 맛이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재미가 있었다. 맑고 붉은 과실미가 가득한 것부터 고소한 것, 그리고 두리안 같은 독특한 풍미가 있는 것, 꽃향이 화사한 것 등 모두 다른 커피가 흥미로웠고, 원두 산지에 관한 이야기나, 원두를 어떻게 가공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두 종은 기존에 레스토랑에서 쓰던 것이고, 새로운 두 개는 이제 바꾸려고 하는 새로운 원두라고 안내를 받았다. 참고로 우드룸에 비치되어 있는 콜드브루 커피는 기존에 쓰던 원두 베이스인데, 앵두와 같은 붉고 맑고 과즙이 많은 새콤한 과실미가 특징적이었다.
다음 장소는 ‘연구 키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서는 레스토랑에서 당장 저녁식사로 나가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 아니라, 새롭게 메뉴에 쓸 다양한 레시피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험해보는 연구소 같은 곳이다. 로컬에서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요리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해 보는 곳이다. 또한 전 세계 각국의 조리법을 로컬 식재료와 연결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예컨대 로컬 옥수수를 베이스로 사케 양조법을 접목해 옥수수 술을 빚는다거나, 다양한 온도와 발효 기간을 두고 콤부차를 만드는 등, 요리의 기본이 되는 베이스를 만들고 실험하며 궁극적으로 고객의 메뉴에 활용한다. 이 키친은 멕시코 출신의 셰프가 이끌고 있고, 한국인 팀원이 서포트를 맡고 있었는데, 한국인은 서울의 2스타 레스토랑 알렌에서 스타지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해서 더욱 반가웠다.
이어 ‘발효실’, 전 세계의 발효 요리법을 경계 없이 탐구한다. 생선 발효부터 아시아의 콩 발효 – 된장이나 미소, 간장 등, 그리고 누룩과 김치까지 발효와 관련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콩을 발효한 뒤 액체만 맑게 걸러낸 것은 훌륭한 감칠맛 소스였다. 김치통을 열어 보니 할머니 집에 온 줄 알았다. 생선 발효는 원래 투어때는 굳이 보여주지는 않는데 내가 너무 궁금해하니 워크인에 들어가서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지만 흥미가 별로 없는 부분은 속도를 내서 지나갈 수 있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은 더 많은 질문과 대화를 하며 깊이 있게 볼 수 있다.
투어를 하는 중간에 거쳐갈 수 있는 직원 휴게실은, 여기가 실내인지 실외인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건물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한국에서 담배를 피는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진 것과는 달리 (아닌가?) 여기는 여전히 담배가 생활에 큰 부분이라, 흡연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이들의 휴식을 위해서 커다란 담배 홀 (?)을 만들어 둔 게 인상적이었다. 또, 벽에는 지금까지 일했던&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든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이 굉장히 웅장하게 느껴졌다.
논밭을 바라보는 커다란 메인 다이닝 홀을 지난다. 메인 다이닝 홀의 객수는 최대 60석인데, 여유를 두고 매일 평균 35석정도를 사용한다고 한다.
다음은 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마법 같은 공간. 증류소이자 술을 빚고 발효하는 공간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코코넛 열매나 야자수 수액, 쌀로 만드는 증류주가 있는데 그 이름은 아락(arak)이다. 아락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이외에도 다양한 알코올, 논알콜 음료를 만든다. 이 공간을 보고 나면 저녁식사를 할 때 음료 페어링을 꼭 시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알코올 페어링이 근사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버섯 배양실. 버섯 배양실은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지하에서 버섯이 실제로 자라는 곳이고, 우리가 방문한 곳은 버섯의 원균을 관리하고 종균을 제조하는 곳이다. 로카보어에서는 요리에 사용하는 모든 버섯을 100% 직접 재배하는데, 덕분에 크기나 모양, 재배 기간까지도 셰프가 원하는대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재배하는 것은 분홍 느타리버섯이고, 이외에도 백목이버섯이나 노루궁뎅이버섯 등을 재배하며, 일부는 가루로 만들어 활용하기도 한다. 아직 표고는 재배하고 있지 않은데, 표고도 곧 올해 안에 재배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라고. 총 10종 이내의 버섯을 재배한다. 버섯만 관리하고 키우는 직원이 있을 정도다.
옆건물로 이동하면 커다란 쓰레기 처리 시설이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서 우리를 반겨준 이는 다름아닌 레스토랑의 수셰프. 주방에서 큰 역할을 맡는 수셰프가, 어쩌면 누군가가 가장 꺼릴 수 있는 쓰레기 처리장의 책임자이기도 하다는 점이 로카보어가 얼마나 쓰레기 관리에 의미와 애정을 두고 있는지 인상적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일반 가정에서도 분리수거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 있어 가정 쓰레기들이 배출될 때 비교적 잘 관리되는 편인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직도 분리수거보다는 일괄 덤핑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레스토랑에서는 문화를 바꾸고, 선도하기 위해 철저한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경우는 생분해 시설을 통해 낮은 에너지로 쓰레기를 퇴비화하고 있다.
이미 1시간 30분 이상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눈이 반짝반짝했고, 이곳에 같이 왔다면 정말 흥미로워했을 셰프들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열정에 불탔다. 그런 나를 보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원래 투어에 옥상 정원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분이 요청한다면 얼마든지 열려 있는 곳이니 부탁해 보시길. 옥상으로 올라가면 기본적인 허브들부터 시작해 양봉 박스까지 볼 수 있었고, 내가 작물에 대해 궁금해하는 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2시간에 이르는 전체 레스토랑 투어를 마치고, 커다란 국화과의 꽃이 가득 핀 텃밭을 지나 다시 우드룸으로 돌아와 디너 식사를 가기 전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대부분의 작물을 레스토랑에서 재배하며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심지어 쓰레기까지도 레스토랑에서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 내보내는 폐쇄 순환 철학(closed-loop ethos)은 많은 셰프들이 꿈꿀 수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많은 영감을 줬다.
3시간에 이르는 디너 리뷰는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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