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아침식사 문화: 하노이부터 푸꾸옥까지
- 7월 10일
- 5분 분량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세계인의 소울푸드, 베트남의 아침식사에 담긴 역사와 삶의 방식.

곧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Luxury Dining Series와 함께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에, 베트남의 음식 문화가 궁금해졌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맛있는 향이 가득한 거리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하노이부터 호치민, 푸꾸옥까지 얼마나 맛의 고장인지 이미 알고 있을 터. 올해 세 번째 에디션을 맞은 럭셔리 다이닝 시리즈는, 베트남에서는 JW 메리어트 푸꾸옥에서 열린다.

남북으로 긴 베트남의 다채로운 요리 문화
베트남의 아침 식사를 전형적인 요리 하나만으로 설명하자니, 참 어려운 일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토와 서로 다른 기후, 상이한 농업 환경, 다양한 역사적 교류가 있던 베트남에서 아침 식사는 지역마다 재료도 조리법도 다르다. 하노이에서는 맑고 절제된 육수의 포, 갓 쪄낸 반꾸온, 찹쌀밥인 쏘이처럼 쌀과 쌀가루를 중심으로 한 음식이 유명하다. 하노이의 조식은 홍강 삼각주의 농경문화와 오래된 상업도시의 거리 경제, 식민지기 도시화와 전후 사회주의 배급체제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졌다. 반면 남서부 해안에 자리한 푸꾸옥에서는 생선과 새우, 오징어 등 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산물이 아침 국수에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섬의 어업과 이주민 문화, 베트남 중부에서 건너온 음식이 현지 해산물과 조미료를 만나 변형된 결과다.
요즘이야 서울엔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이 더 많지만, 전통적으로 한식 아침식사는 집에서 가족이 함께 차려 먹는 풍경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아침은 반드시 집에서 함께 먹는 그림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국수 한 그릇이나 찹쌀밥 한 봉지를 집 근처 가게나 시장에서 사 먹고 일터나 학교로 바로 가는 식이다. 베트남 도시에는 전통 시장, 노점, 이동식 행상, 소규모 전문 음식점이 슈퍼마켓과 체인점 같은 현대적 유통망과 나란히 존재한다. 도시화와 소득 증가, 여성의 경제활동, 시간 사용 방식의 변화가 외식과 즉석식품 소비를 확대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1986년 도이머이 개혁 이후 민간 상업 활동이 다시 합법화되고 활발해지면서 거리 판매와 소규모 음식업이 도시 생활의 중요한 일부로 재부상했다. 따라서 거리에서 먹는 아침은 도시의 이동과 노동에 맞춰 발달한 베트남 특유의 일상이다.
베트남의 문화 심장, 하노이의 아침
하노이의 아침식사 문화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다. 동이 틀 무렵 시장이 열리고 노동자와 상인, 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포와 죽, 쏘이, 반꾸온을 파는 가게들도 서둘러 문을 연다. 반꾸온은 하노이의 대표적인 아침 음식인데, 물에 불린 쌀을 갈아 얇게 쪄낸 뒤 다진 돼지고기와 목이버섯을 넣고 말아, 튀긴 샬롯과 피시소스, 베트남식 돼지고기 소시지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반죽을 주문 즉시 쪄야해서 사람들은 조리대 앞에 서서 기다렸다가 바로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 쏘이 역시 흔한 아침 메뉴인데, 찹쌀을 쪄 녹두, 땅콩, 닭고기, 돼지고기, 튀긴 샬롯 등을 곁들인다. 포장하거나 들고 먹기 좋아서 이동 중 먹기에도 좋고, 포만감도 큰 서민적인 메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베트남 쌀국수, 포는 베트남 요리를 대표하는 메뉴로 늘 손꼽힌다. 그 시작과 발전은 하노이와 남딘 일대의 근대사와 깊이 연결된다. 포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남아 있다. 프랑스식 쇠고기 스튜 포토푀에서 이름과 조리법이 유래했다는 설, 중국계 이주민의 쇠고기 쌀국수와 관련이 있다는 설, 북부의 물소고기 국인 싸오쩌우가 변형되었다는 설… 그래서 “프랑스의 영향으로 포가 생겼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지배 아래 쇠고기 소비와 도축이 증가했고, 하노이의 도시화와 노동 인구의 확대 속에서 값싼 고기 부위와 뼈를 이용한 국수가 노점 음식으로 성장했다는 점에는 비교적 넓은 공감대가 있다. 프랑스인들의 쇠고기 수요가 늘면서 남은 뼈와 부산물이 현지 국물 음식에 활용되며 포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포는 외래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인 음식이 아니라 쌀국수, 피시소스, 향신료와 국물이라는 베트남의 기존 조리문화가 식민지 도시의 새로운 식재료 공급 구조와 만나 탄생한 음식이었다.

하노이식 포는 일반적으로 국물과 고기의 맛을 중심으로 곁들임을 비교적 절제한다. 남부식 포에서 많은 양의 생허브와 숙주, 호이신 소스가 나오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하노이 가게에 적용되는 불변의 규칙은 아니다.
포는 후딱 먹고 일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신속한 한 끼이고, 사장님부터 직원, 학생들, 주부까지 같은 테이블 위에 간단히 잠시 앉아 공유하는 도시 음식이다. 값싼 포 한 그릇은 육체노동자에게 열량과 온기를 제공했고, 이름난 노포의 포는 중산층과 관광객에게 도시의 정체성과 취향을 소비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포나 반꾸온이 더 다양한 소비 형태로 분화됐는데, 오래된 거리 가게, 위생과 인테리어를 강조한 현대식 매장, 고급 호텔에서 서로 다른 의미와 가격을 갖게 됐다.
하노이의 거리 음식은 도시의 낭만적인 풍경이자, 농촌과 도시를 잇는 생계다. 하노이의 노점상들은 대부분 인근 농촌 지역에서 들어온 이주 노동자였고, 특히 행상에는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들은 새벽에 도매시장이나 산지에서 물건을 받아 도시의 골목과 주거지를 이동하며 판매했다. 도시에서 번 돈을 고향으로 보내는 사회 전반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도시 현대화와 ‘문명화’를 내세운 정책 속에서 하노이 당국은 여러 도로와 공공장소에서 노점을 제한하고 서서히 철거해왔다. 그럼에도 노점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그것이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이기 이전에 도시 주민의 식생활과 저소득 이주민의 생계에 깊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전후 경제도 하노이의 식생활을 바꾸었다. 베트남 독립 이후 이어진 전쟁과 사회주의 배급제 시기에는 식량과 육류, 조미료가 충분하지 않았고 외식이나 풍성한 가정식은 많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이른바 바오껍, 즉 국가 배급경제가 유지되던 시기에는 식권과 배급표만이 소비할 수 있는 전부였고, 가정에서는 확보할 수 있는 재료를 아껴야 했다. 이런 사회적 결핍 속에서 단일 메뉴를 파는 작은 노점과 가정 기반 판매가 도시 주민에게 실용적인 식사 공급원이 되었다.
물론 이런 전쟁 이후의 사회적 영향과 함께, 하노이의 문화적인 배경도 중요하다. 하노이는 프랑스가 도착하기 전부터 시장과 상업, 행상이 활발했던 도시였고, 거리 판매는 역사가 훨씬 길다. 전쟁과 배급체제는 기존의 거리 경제를 위축시키고 재편했고, 도이머이 이후 민간 판매가 다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아름다운 섬 푸꾸옥의 아침
푸꾸옥의 아침은 하노이와 다른 자연환경에서 출발한다. 하노이가 홍강 삼각주의 쌀과 가축, 내륙 수산물과 연결되어 있다면 푸꾸옥은 어장과 항구, 생선·새우·오징어, 피시소스 생산으로 대표되는 섬이다. 그렇다고 푸꾸옥의 아침에 언제나 해산물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포와 반미, 쏘이처럼 베트남 전역에서 먹는 음식도 흔히 찾을 수 있다.

베트남 전반의 식문화 위에 해산물과 이주 역사가 겹쳐 나타나는 푸꾸옥의 대표적인 음식이 ‘분꿔이’다. 분꿔이의 전신은 1955년경 베트남 중부에서 푸꾸옥으로 건너온 다진 새우 국수였다. 처음에는 분똠, 즉 새우국수라고 불렸으나 1996년 무렵 끼엔싸이 가족이 푸꾸옥의 다양한 신선한 해산물과 현지 양념을 활용해 조리법을 변형하면서 오늘날의 분꿔이로 발전했다.
어쩌면, 로컬에서 가장 대표적인 요리조차 때로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 외래에서 유입된 요리라는 점이 흥미롭다. 분꿔이는 중부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의 국수가 섬의 재료와 결합하며 푸꾸옥 음식이 된 사례다. 갓 만든 쌀국수에 다진 새우나 생선 살, 오징어 등을 넣고 뜨거운 국물을 부으며, 손님이 라임이나 금귤, 소금, 설탕, 고추 등을 직접 섞어 소스를 만드는 방식이 특징이다. ‘꿔이’라는 이름도 소스를 계속 저어 섞는 동작과 관련된다. 하노이의 포가 오랜 시간 끓인 육수의 균형과 절제된 고명에 중심을 둔다면, 분꿔이는 갓 잡은 해산물의 탄력과 손님이 직접 완성하는 강한 산미·매운맛의 소스가 중요한 음식이다. 이는 북부와 남부의 추상적인 미각 차이보다, 내륙 수도와 열대 섬이라는 생활환경의 차이를 더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베트남 가정식은 일반적으로 밥을 중심으로 국, 채소, 생선이나 고기 반찬을 함께 놓고 구성원들이 나눠 먹는 점심이나 저녁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반면 평일 아침은 가족 구성원마다 등교와 출근 시간이 다르고 준비 시간이 짧기 때문에 집에서 전날 남은 밥이나 죽, 간단한 국수, 빵을 먹기도 하고 밖에서 각자 사 먹기도 한다. 즉 베트남의 가족 문화가 약해서 아침을 거리에서 먹는다기보단 공동 식사가 오후 시간에 더 중시된다고 보는 것이 좋다. 사실 집에서 만든 음식과 상업적인 음식의 경계도 유동적인데, 많은 노점과 소규모 식당이 집 앞이나 주택의 1층에서 운영되고, 판매자는 가족의 조리법과 노동력을 사용한다. 가정의 부엌이 그대로 동네의 아침 식당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식민지 시대의 유산, 반미와 커피
식민지 시대가 남긴 바게트와 커피도 현재 베트남 아침의 일부다. 프랑스는 식민지배와 함께 밀가루 빵과 커피, 파테, 버터, 유제품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요즘의 반미는 프랑스 바게트와는 빵 자체도 꽤 다른데, 정통 바게트보다 훨씬 밀도가 낮고, 부드럽고, 가볍다. 이 사이에 파테와 고기뿐 아니라 피클, 고수, 칠리, 피시소스 계열의 양념을 결합하며 베트남 간식의 대명사가 됐다!
커피 역시 연유와 얼음을 활용하는 현지 방식으로 변화했다. 프랑스의 흔적은 남았지만 그 음식의 의미와 주도권은 베트남 사회로 이동했다. 식민지배의 유산을 낭만적인 ‘퓨전’으로만 설명하기보다, 강압적인 역사 속에 들어온 재료와 기술을 현지 사람들이 값과 기후, 입맛에 맞게 전유한 결과가 아닐까.

하노이와 푸꾸옥의 아침식사를 보면, 각 지역의 사람들이 어떤 환경과 역사 속에서 하루를 시작해왔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하노이의 포와 반꾸온에는 오래된 시장도시, 식민지 도시화, 배급시대의 결핍과 도이머이 이후의 상업화가 겹쳐 있다. 푸꾸옥의 분꿔이에는 바다와 어업, 중부 이주민의 이동, 섬의 해산물을 새 음식으로 바꾼 비교적 최근의 창조가 담겨 있다. 두 지역 모두 거리에서 사 먹는 아침이 일상적이지만, 집과 거리, 전통과 상업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는 것이 베트남 아침 문화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베트남의 다채로운 맛과 향으로 아침을 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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