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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섬으로 향하는 항구, 라부안 바조

  • 7월 16일
  • 6분 분량

발리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용의 섬 라부안 바조로 떠났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이야기할 때 한국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대개 발리다. 비즈니스가 목적이라면 자카르타.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1만7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도 국가이고, 발리는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발리에서 동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이동하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논과 사원, 야자수 숲 대신 햇볕에 마른 사바나 언덕이 바다 위로 솟아오르고, 짙은 남색 해협 사이로 수십 개의 섬이 고래의 등처럼 이어진다. 그 풍경이 시작되는 항구가 바로 라부안 바조(Labuan Bajo)다.


라부안 바조는 인도네시아 플로레스(Flores)섬 서쪽 끝에 자리한 작은 항구 도시다. 지도상으로는 발리와 롬복, 숨바와를 지나 동쪽으로 이어지는 소순다 열도의 한 지점이며, 행정적으로는 서망가라이(West Manggarai) 지역의 중심지다. 하지만 여행자에게 라부안 바조는 코모도왕도마뱀이 살아가는 섬, 서로 다른 빛깔의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만타가오리와 거북, 돌고래가 헤엄치는 바다, 휴대전화 신호보다 조류와 바람의 방향이 더 중요해지는 세계가 열리는 대문과 같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코모도 국립공원(Komodo National Park)으로 들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이 라부안 바조다.



바다와 도시의 경계에 세워진 여행의 전초기지

라부안 바조의 첫인상. 의외로 작고 현실적인 도시의 모습이 다가온다. 비탈진 길을 따라 작은 상점과 다이빙 숍, 여행사, 카페와 호텔이 이어지고, 길 아래로는 수많은 배가 정박한 항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라부안 바조의 건축이나 도시 풍경 자체가 발리의 우붓이나 스미냑처럼 미적인 아름다움이 있지는 않다. 빠르게 성장한 관광도시 특유의, 오래된 어촌의 흔적과 새로 들어선 호텔, 선착장, 상업 시설이 혼재한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얼굴은 ‘바다’를 향한다.


오후가 되면 항구의 수평선 뒤로 둥글고 낮은 섬들이 겹겹이 실루엣을 만든다. 해가 내려갈수록 바다는 은빛에서 금빛으로, 다시 자줏빛으로 변하고, 목조 피니시(phinisi) 선박과 스피드보트가 검은 그림자처럼 물 위에 떠오른다. ‘천 개의 일몰이 있는 땅’이라는 별명처럼, 같은 항구에서도 날씨와 구름, 정박한 배의 위치에 따라 매일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난 호텔 테라스나 언덕 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인 호사다.



코모도 국립공원, 선사시대의 육지와 살아 움직이는 바다

코모도 국립공원은 플로레스와 숨바와 사이에 위치한 코모도섬, 린차(Rinca)섬, 파다르(Padar)섬을 비롯한 여러 섬과 주변 해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0년 코모도왕도마뱀과 그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9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이곳을 건조한 사바나와 가파른 화산성 지형, 흰 모래 해변과 푸른 바다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장소이자, 독특한 육상 생태계와 풍부한 해양 생물다양성을 함께 보존하고 있는 지역으로 평가한다.


코모도왕도마뱀은 현존하는 도마뱀 가운데 가장 큰 종이다. 오늘날 코모도섬과 린차섬을 비롯한 인도네시아의 제한된 지역에만 야생 개체가 남아 있으며, 한때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일대에 서식했던 대형 도마뱀 집단의 마지막 후손으로 여겨진다. 그 뿐 아니다. 육지에는 티모르사슴과 멧돼지, 원숭이와 여러 조류가 살고, 해협에서는 거북과 돌고래, 듀공, 고래가 관찰된다. 강한 조류를 따라 영양분이 이동하는 바닷속에는 산호초와 대형 어군, 상어와 만타가오리가 공존한다. 코모도의 풍부한 산호초와 강한 해류가 다양한 해양 생물을 불러들이는 중요한 조건이다.


코모도 국립공원의 매력은 이처럼 육지와 바다를 분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오전에는 건조한 숲을 걸으며 코모도왕도마뱀을 찾고, 한두 시간 뒤에는 산호초 위를 헤엄치며 바다거북을 바라본다. 다시 배에 올라 핑크빛 모래 해변으로 이동하고, 오후에는 무인도 능선 위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해협을 내려다본다. 하나의 국립공원 안에서 사파리, 트레킹, 스노클링, 다이빙, 세일링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파다르섬, 라부안 바조의 아이코닉한 능선

라부안 바조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대개 파다르섬의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 개의 만이다. 뾰족하게 이어진 갈색 산등성이가 바다를 가르고,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한 초승달 모양의 해변이 청록색과 군청색 물빛 사이에 놓여 있다. 고도에 따라 여러 개의 전망대가 있지만, 정상 가까이 올라 보는 지형이 가장 으뜸이다. 건기에는 풀이 황금빛으로 마르며 섬 전체가 조각된 금속처럼 보이고, 우기가 끝난 뒤에는 능선이 짧은 기간 선명한 초록빛을 띤다.


파다르 트레킹은 전문적인 등반은 아니지만 결코 가볍게 볼 산책도 아니다. 특히 정오 무렵에는 그늘이 거의 없는 계단과 경사면에 열기가 엄청나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가 일출 시간에 맞추어 방문하는데, 동이 크기 전 선착장에 내려 손전등을 켜고 오르기 시작하면, 정상에 가까워질 무렵 섬 뒤편으로 빛이 번진다. 해가 능선 위로 떠오르는 짧은 시간 동안 바다의 색과 산의 윤곽이 분 단위로 달라진다.


그러나 파다르의 유명세가 때로는 여행의 리듬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동일한 일출 시간을 목표로 수많은 배가 비슷한 시각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조용한 경험을 원한다면 반드시 일출만을 고집하기보다 선박의 동선과 조수, 날씨를 고려해 방문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프라이빗 보트를 택하는 방법도 있다. 정상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것이 목표라면 빠른 당일 투어로도 충분하지만, 파다르가 포함된 해역 전체의 빛과 지형을 느끼려면 적어도 두세 날을 배 위에서 보내는 편이 훨씬 풍성하다.





코모도 왕도마뱀 어디서 어떻게 만날까

코모도왕도마뱀을 관찰하는 대표적인 장소는 코모도섬과 린차섬이다. 어느 섬을 선택할지는 투어의 항로와 출발 시각, 해상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두 곳 모두 방문객이 자유롭게 숲속을 돌아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국립공원 레인저와 함께 지정된 구간을 이동한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야생 포식자다. 눈앞에서 느리게 움직인다고 해서 안전한 동물이 아니다. 더운 낮에는 나무 그늘이나 건물 아래에서 움직임을 줄이기도 하고, 운이 좋다면 숲길이나 물가에서 이동하는 개체를 볼 수 있다. 야생동물이므로 반드시 가까이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마른 흙 위에 남은 발자국을 따라가거나, 레인저가 숲속의 미세한 움직임을 살피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핑크 비치와 작은 섬들

코모도 국립공원의 육지가 황갈색과 짙은 초록의 대비로 기억된다면, 해변에서는 색의 스펙트럼이 훨씬 섬세해진다. 가장 유명한 곳은 핑크 비치(Pink Beach)다. 산호와 조개가 깨져 만든 붉은빛 입자가 밝은 모래와 섞이며 해변이 분홍빛으로 보인다. 빛의 각도와 모래의 습도에 따라 어떤 날에는 선명한 장밋빛으로, 어떤 때에는 아주 옅은 살구색으로 느껴진다.


핑크 비치뿐 아니라 카나와(Kanawa), 타카 마카사르(Taka Makassar), 시아바(Siaba)와 여러 이름 없는 작은 섬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행의 리듬을 바꾼다. 타카 마카사르는 조수에 따라 드러나는 가늘고 낮은 모래톱으로, 주변 바다가 믿기 어려울 만큼 투명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육지라기보다 바다 표면에 흰 붓질을 한 것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개 길지 않지만, 배에서 내려 얕은 물을 걷는 순간 여행자는 자신이 도시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비로소 실감한다.





만타가오리와 함께 헤엄치는 바다

만타 포인트(Manta Point)와 마카사르 리프(Makassar Reef) 일대에서는 플랑크톤을 따라 이동하거나 클리닝 스테이션을 찾은 만타가오리를 스노클링과 다이빙 중 만날 가능성이 있다. 거대한 날개처럼 펼쳐진 지느러미가 물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우아하다. 계절과 수온, 조류, 플랑크톤의 분포에 따라 위치와 개체 수가 달라진다. 일부 현지 다이빙 운영사는 우기에 남부 해역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한 차가운 물이 유입되면서 만타가 더 많이 모이는 시기가 있다고 설명하지만, 연중 관찰 사례가 있으며 해역별 조건도 다르다.


만타를 발견하면 배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물로 뛰어드는 장면이 벌어지기 쉽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만타의 진행 방향을 막거나 위에서 내려앉아서는 안 되고, 만지거나 쫓아가서도 안 된다. 조류가 있는 곳에서는 개인의 수영 능력을 과신하지 않아야 한다. 스노클링이라도 구명조끼와 가이드의 지시를 따르고, 물살이 빠른 날에는 입수를 포기하는 판단이 필요하다.


코모도의 바다는 다이버에게 특히 특별하다. 바투 볼롱(Batu Bolong), 캐슬 록(Castle Rock)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다이빙 포인트가 밀집해 있다. 대형 어군과 리프상어, 거북, 만타가오리, 건강한 산호 군락을 만날 수 있지만 일부 포인트는 조류가 매우 강하다. 조류가 다이빙의 풍경을 풍성하게 만드는 동시에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초보 다이버는 자격증 보유 여부만으로 포인트를 선택하지 말고, 최근 다이빙 횟수와 조류 경험을 운영사에 정확히 알려야 한다. 숙련된 다이버에게 코모도는 역동적인 바다의 정수를 보여주지만, 자신의 수준을 숨기는 순간 그 역동성은 위험으로 바뀐다.





바다, 어떻게 경험할까

라부안 바조 여행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선택은 어떤 배를 타느냐이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이른 아침 출발해 파다르섬, 코모도 또는 린차섬, 핑크 비치, 만타 포인트와 모래톱 등을 하루에 연결하는 스피드보트 투어다. 일정이 짧고 주요 명소를 빠짐없이 보고 싶은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이동 시간이 짧고 보통 하루 만에 대표적인 장면들을 경험할 수 있지만, 각 장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제한되고 하루 종일 정해진 스케줄을 따라야 한다. 파도가 높은 날에는 작은 배의 승차감이 상당히 거칠 수 있다.


그 반대편에는 2박 3일 또는 그 이상의 리브어보드 여행이 있다. 인도네시아 전통 범선에서 영감을 받은 목조 피니시를 타고 배에서 숙식하며 섬 사이를 이동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기본적인 공동 객실을 갖춘 배부터 호텔 스위트에 가까운 객실과 전용 욕실, 다이닝 공간, 선데크를 마련한 럭셔리 선박까지 선택지가 크게 넓어졌다. 리브어보드의 진짜 장점은 더 많은 명소를 보는 데 있지 않다. 일몰 뒤에도 섬 사이에 머물고, 새벽에 다른 배들이 도착하기 전에 항로를 시작하며, 하루의 목적지가 끝난 뒤에도 바다 위의 시간이 계속된다는 데 있다.


선데크에서 커피를 마시며 무인도 사이를 통과하고, 한낮의 트레킹과 스노클링을 마친 뒤 선실로 돌아와 젖은 수영복을 널어놓는 일, 해가 진 후 빛 공해가 거의 없는 하늘에서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 여행의 중심이 된다. 라부안 바조의 풍경은 특정 전망대보다 섬과 섬 사이에서 더욱 아름답다. 수십 개의 능선이 거리와 빛에 따라 푸른색, 회색, 검은색으로 겹쳐지는 장면은 배를 타고 천천히 이동할 때 비로소 길게 관찰할 수 있다.



육지의 라부안 바조, 동굴과 폭포 그리고 플로레스의 내륙

코모도 국립공원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니고 있어 라부안 바조의 육지 여행은 쉽게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항해 전후 하루 정도를 남겨두면 이 지역의 다른 표정을 볼 수 있다. 도심에서 비교적 가까운 바투 체르민(Batu Cermin), 즉 ‘거울 동굴’은 특정한 각도로 들어온 햇빛이 암석 표면에서 반사되는 모습에서 이름을 얻었다. 좁고 어두운 구간을 지나야 하므로 편한 신발을 신고 현지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는 것이 좋다.


랑코 동굴(Rangko Cave)은 석회암 동굴 안쪽에 푸른빛의 물웅덩이가 형성된 곳이다. 빛이 동굴 입구를 통해 깊숙이 들어오는 시간대에는 물빛이 더욱 선명해진다. 육로와 작은 배로 접근할 수 있는데, 사진에서는 고요한 비밀 수영장처럼 보이지만 바위가 미끄럽고 조류가 위험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시간이 난다면 쿤차 라미(Cunca Rami), 쿤차 울랑(Cunca Wulang) 일대의 폭포와 협곡이 둘러볼만한 명소다.



망가라이의 땅에서 여행자가 보아야 할 것

이곳은 관광도시가 되기 이전부터, 어업과 해상 교역을 기반으로 살아온 작은 항구였다. 오늘날 도시에는 플로레스의 망가라이인뿐 아니라 부기스, 비마, 바자우 등 여러 지역과 섬에서 이주해 온 공동체가 함께 살아간다. 관광업이 성장하며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온 노동자와 사업자도 증가했다. 해양과 내륙, 오래된 공동체와 새로운 관광 산업이 겹쳐진 공동체다.


서망가라이 내륙의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와 농경, 조상에 대한 기억이다. 망가라이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원형으로 펼쳐진 거미줄 모양의 논, 링코(lingko)다. 토지를 중심에서 바깥으로 분할한 형태가 거미줄처럼 보이는데, 공동체의 토지 분배와 사회관계가 공간에 새겨진 결과다.


음식은 어떨까. 동누사틍가라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지역별 식재료와 조리법의 차이가 큰 곳이다. 옥수수와 카사바, 쌀, 바나나, 코코넛, 다양한 잎채소가 사용되며, 돼지고기를 먹는 가톨릭 공동체와 할랄 식문화를 지닌 무슬림 공동체가 공존한다. 그럼에도, 항구 도시답게 생선과 오징어, 새우 등 해산물이 일상적인 식탁의 중심을 이룬다. 현지식 해산물 식당에서는 그날 들어온 생선을 고른 뒤 숯불에 구워 삼발과 밥, 채소를 곁들여 먹는 방식이 흔하다. 강한 불에 그을린 생선 껍질과 매콤하고 산미 있는 삼발, 따뜻한 밥의 조합은 화려하지 않지만 바다에서 보낸 긴 하루 뒤 따뜻한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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