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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호텔 노트를 공개하며,

  • 작성자 사진: Julia Lee
    Julia Lee
  • 11월 7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1월 10일

원래 세상 만사가 그렇지만, 처음엔 그냥 비싸고 좋아 보이면 ‘와,’ 하는 시기가 있었다. 왜 없겠는가. 태어날 때부터, 어디 중동 왕자처럼 다이아몬드 박힌 아기침대에 누워 자라 왔으면 럭셔리의 경험에 대한 역치가 훨씬 높았겠지만, 다들 그렇잖아. 처음엔 그냥 좋은 호텔에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나도 그랬다. 럭셔리 호텔은 정말 특별한 기념일에 큰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니 ‘비교할 만큼’ 충분한 경험의 데이터를 쌓는 것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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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럭셔리 호텔에 호캉스를 하러 체크인을 하면 쉴 수가 없다. 체크인하자마자 라운지에 가서 숙박에 포함된 애프터눈 티를 마시고, 수영장에 가서 몸에 물도 묻혀 보고 사진도 찍고 그리고 나서 해피아워 서비스를 통해 와인을 즐기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선다. 체크인 전에 사우나도 들러 온탕에도 들어가고, 잠시 러닝머신 위에도 올라 본다. 어느덧 체크아웃 시간. 집에서 쉬면 되니까, 라는 말로 더할 나위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호텔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을까. 어디가 좋은 호텔, 몇 성급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호텔마다 그저 가구와 외장재가 다른 것만 겨우 알 수 있었지 평가의 의미를 크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들어선 호텔은, 역사를 조금도 배우지 않고 들어선 박물관이나 다를 바가 없다. 모르고 보면 부서진 돌덩이다. 알고 보면 유럽의 역사를 바꾼 상징이다. 그렇게 호텔도, 아는 만큼 보인다.


지난 10년간 –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사회 전반이 급격히 변화하고, 세대의 감성이 명백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화폐가치 또한 가파르게 떨어지며 반작용으로 ‘경험’의 효용이 크게 재평가되었다. 사람들의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을 가장 큰 원동력으로 삼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는 가죽제품과 의류를 넘어서는 경험 재화를 빠르게 큐레이팅해냈다. 그 10년 동안 브랜드는 F&B씬을 포용하며 직접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리빙과 라이프스타일 상품군을 넓히며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이제 ‘스테이’로도 확장하며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의 총체를 큐레이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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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업계의 일원이라는 계기로 – 온전히 개인 소비자였다면 거의 파산했을 정도로 – 다양한 경험을 수년간 이어오며 점점 더 갈증이 커졌다. 자꾸 반복해 경험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눈에는 그저 좋고 큰 방이라고만 생각했던 곳에서, 파란 체크 벽지가 로로피아나 캐시미어라는 것을 보게 되고, 왜 통유리창 바로 옆을 거울로 마감했는지 디자인의 의도가 보이고, 어떻게 체크인을 하러 가는 날 호텔 정문 앞에서 나에게 ‘굿 모닝 미스 줄리아’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는지 충격과 놀라움을 경험하며 이 마술적인 공간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졌다. 호텔의 이름 뒤에 숨을 브랜드의 역사와 헤리티지를 알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호텔이 왜 좋은지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잘 설명하고 싶어졌다.


찾고 정리한 노트가 컴퓨터 안에만 잠자고 있는 것이 아까워 함께 나누게 된 글들. 이 기록들이 또 자신의 삶의 취향을 누군가에게, 좋은 지침이 되기를 바라며 시간 내어 정리했다. 방대한 건축물 같아도, 부분 부분 만지고 느끼다 보면 그 이야기를 조금은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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