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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탐구: 월도프 아스토리아 상하이

  • 작성자 사진: Julia Lee
    Julia Lee
  • 12월 15일
  • 5분 분량

상하이 월도프 아스토리아, 헤리티지 브랜드 탐험


시대의 풍경을 그려내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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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세월의 우아함을 품은 클래식한 호텔을 좋아한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브랜드,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 세상에 럭셔리 호텔은 다양하지만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그만의 독특한 감성을 갖춘 브랜드다. 뭐랄까, 한 도시가 가장 화려했던 순간과 가장 권위 있던 시간을 품은 무대에 비유하면 될까. 이 브랜드가 어떤 역사와 철학를 “럭셔리”로 정의해 왔는지 알아보자.



힐튼의 최상위 브랜드, 월도프 아스토리아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글로벌 호텔 그룹 힐튼(Hilton)의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다. 힐튼의 포트폴리오 안에는 콘래드, LXR, 캐노피 같은 다양한 성격의 브랜드가 있지만,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이고 보수적인 느낌. 도시의 ‘아이코닉’한 감성을 살린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힐튼이 규모와 접근성의 실용주의 북미 감성 호텔 그룹이라면, 그 안에서 “우리는 원래 이런 격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정체성을 증명하는 얼굴에 해당한다.


브랜드의 출발점은 뉴욕이고, ‘사회적 럭셔리’를 표방한다.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모든 서사는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다. 1893년, 그리고 이후 1931년에 재탄생한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20세기 미국 사회의 중심 무대였다. 대통령, 왕족, 산업가, 외교관,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곳을 거쳐 갔고, 국제 회의와 무도회, 정치적 담판과 사교 이벤트가 자연스럽게 이 호텔 안에서 열렸다. 당시 이 브랜드가 뉴욕이라는 도시와 맞물리며 만들어낸 독특한 럭셔리는 “보여지는 자리에서의 품격”, 다시 말해 사회적 럭셔리였다.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가 오가고, 뉴스가 만들어지는 장소. 브랜드의 시작점부터 ‘사적인 휴식처’ 보다는 (예를 들어 사적인 럭셔리의 끝판왕 Aman과는 달리-) ‘공적인 무대’로서의 호텔을 지향해왔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브랜드의 핵심 DNA로 남아 있다.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세계 각 도시의 역사를 품다

전 세계 36개 내외의 비교적 희소한 프로퍼티. 숫자로 보면, 컬렉션형 럭셔리 라인에 가깝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럭셔리는 ‘최신 트렌드’보다 ‘레거시가 축적된 장소성’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데, 이곳의 키워드를 말할 때 ‘아이코닉한 목적지, 랜드마크, 진심 어린 우아한 서비스, 그리고 각 도시의 감각을 반영한 독특한 지역 감성’이 빠지지 않는다.


월도프가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구별되는 지점은 객실의 화려함 같은 단일 요소가 아니라 “호텔이 도시에서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가”를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라는 이름 자체가 20세기 도시 사교 문화의 상징으로 작동했던 만큼, 브랜드의 정체성에는 ‘사람들이 만나고 장면이 만들어지는 공용 공간’이 깊게 박혀 있고, 이를 대표하는 시그니처가 바로 Peacock Alley 같은 ‘호텔의 중심 거리’ 개념이다.


월도프가 특히 강점을 보이는 분야가 바로 헤리티지 건물(문화유산·역사적 건축)의 재해석이다. 전 세계적으로 헤리티지 보존의 국제적 원칙은 ‘진정성(authenticity)과 최소 개입, 그리고 문화적 의미(cultural significance)를 훼손하지 않는 적응적 재사용(adaptation)’을 핵심으로 한다. 월도프는 이 프레임을 “럭셔리 호텔 운영”이라는 현실적 요구(동선, 설비, 안전, 프라이버시, F&B, 스파 등)와 충돌시키지 않고 서로 양립시키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상하이 월도프 아스토리아 온 더 번드가 대표적인 사례. 이 호텔의 헤리티지 빌딩은 1911년 완공된 옛 상하이 클럽(Shanghai Club) 건물로, 호텔 공식 설명에서도 아카이브 사진과 역사 기록을 근거로 복원했고, 인테리어 설계는 HBA가 진행하면서 ‘Heritage’ 프로젝트로 분류해,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긴 바 중 하나로 알려졌던 Long Bar와 같은 상징적 요소를 ‘복원의 대상’이자 ‘브랜드 경험의 장치’로 다뤘다. 많은 경우, 철학적인 고민이 없으면 헤리티지를 레트로한 장식으로만 소비하기 쉽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원래 수행하던 사회적 기능이다. 과거의 아이코닉한 건물과 공간은 사교와 비즈니스, 중요한 식문화의 핵심이었다. 이런 기능을 오늘의 호텔 언어로 번역해내는 것이 월도프의 철학.



월도프 아스토리아 헤리티지 빌딩 (구관) 객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헤리티지 빌딩 (구관) 객실


월도프 아스토리아 상하이, 직접 경험하며 가까이서 느낀 것들

호텔을 이야기할 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중요하지만, 상하이 월도프 아스토리아 온 더 번드의 정체성은 일단 ‘헤리티지 빌딩’이 시작점이다. 개인적으로 유서깊은 건축물을 레노베이션한 스타일의 호텔을 신축 럭셔리 호텔보다 훨씬 선호하기에, 더 즐거웠던 스테이였다.


1911년 완공된 옛 상하이 클럽(Shanghai Club)은 20세기 초 상하이가 어떤 도시였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이곳은 19세기 중반 이후 국제조계로 성장한 상하이에서 영국인 상인과 금융가, 외교관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남성 전용(!!!) 젠틀맨스 클럽이었다. 뭐야, 예전이면 여자라는 이유로 발도 못 디뎠을 곳이군. 이 클럽은 오늘날의 사교 클럽이나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원형에 가까운 공간으로, 내로라 하는 인물들이 모여 술도 마시고 밥도 함께 먹고, 카드 게임과 독서, 정보도 교환하는 살롱이었다. 클럽의 회원 자격은 곧 사회적 지위와 직결되었고, 상하이 클럽은 번드의 은행과 무역회사들이 만들어낸 부의 흐름이 실제로 ‘사람’의 관계로 전환되는 장소였다. 이 건물은 번드의 파사드가 상징하는 금융 자본의 외피 뒤에서, 실질적인 네트워크와 권력이 작동하던 무대였던 셈이다.


1911년 재탄생한 네오클래식+바로크 파사드
1911년 재탄생한 네오클래식+바로크 파사드

1911년 이전까지 붉은 벽돌 파사드였던 이 건물은 흰색 석재를 주 재료로 네오클래식과 바로크 리바이벌 양식을 바탕으로 하며 번드의 시작점과 같은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상하이 여행을 할 때,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내려주세요’라고 한 뒤 쭉 번드를 따라 걷는 것이 정석 코스다. 우아한 상아색 석재 파사드, 강한 수직 리듬, 거친 느낌으로 하부의 러스티케이션 처리, 균형 잡힌 대칭 구조를 통해 당시 서구 근대 건축의 권위와 질서를 반영하며 상하이의 독특한 감성을 품어낸다. 내부도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대리석 계단과 기둥, 섬세한 몰딩과 스테인드글라스, 철제 난간과 초기 엘리베이터 설비까지. 실제로 엘리베이터는 지금도 작동하는데, 이처럼 20세기 초 상하이가 받아들였던 최신 기술과 공예가 결합되어 있었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상하이는 이미 세계 도시다”라는 선언을 건축으로 구현한 상징적 존재였을 것이다.



Long Bar at Waldorf Astoria Shanghai
Long Bar at Waldorf Astoria Shanghai


조금 미안하지만, 이곳의 ‘롱 바’를 보고 바로 떠오른 질문이 “Long bar는 Raffles 호텔 시그니처 아니에요?”라는 거였다. 물론 이름만 같고, 굳이 따지자면 여기가 먼저다. 상하이 클럽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한데, 길이가 30미터가 넘어 한때는 아시아에서 가장 긴 바였고, 그래서 이름도 단순하게 ‘롱 바’가 된 거였다. 클럽의 사교 문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클럽 회원들은 이 긴 바를 따라 나란히 서서 위스키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쌓았고, 이곳에서 만들어진 만남과 정보는 상하이의 금융·무역 네트워크로 확장되었다. 상하이 클럽이라는 조직의 사회적 기능을 응축한 이 구조물은 여전히 위스키와 꼬냑, 칵테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 건물의 역사는 20세기 중반 이후 급격히 변한다. 제2차 세계대전기에는 일본 해군 장교 클럽으로 사용되었고, 전후에는 클럽 제도가 해체되며 국가에 의해 수용된다. 이후 선원 클럽, 동펑 호텔 등 여러 용도로 전환되었고, 개혁개방 이후에는 대중 소비 문화의 상징적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한때 이 건물 1층에 상하이 최초의 KFC가 들어섰다는 점! (네, 저도 KFC 좋아하긴 합니다만…) 그만큼 이 공간이 엘리트 사교의 무대에서 대중 소비의 상징으로 이동해온 상하이 현대사의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건물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늘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른 기능과 의미를 부여받아 왔다.



신관, 푸동 스카이라인이 정면으로 보이는 룸
신관, 푸동 스카이라인이 정면으로 보이는 룸


그리고 드디어 호텔 차례. 2000년대 후반, 이 건물은 대규모 재개발을 거쳐 월도프 아스토리아 상하이 온 더 번드의 헤리티지 빌딩으로 편입된다. 프로젝트는 상하이 현지 개발사와 글로벌 호텔 그룹 힐튼의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고, 운영 브랜드로 월도프 아스토리아가 선택됐다. 설계는 포트만 아키텍츠가 전체 마스터플랜을 맡아, 상하이 클럽 건물의 보존과 함께 뒤편에 현대적인 고층 타워를 신축하고 두 건물을 하나의 호텔로 연결하는 구조로 계획했다. 내부 공간 디자인은 HBA가 담당해, 헤리티지 공간의 중후한 클래식과 신축 타워의 현대적 럭셔리가 하나의 톤으로 묶인다. 신축 빌딩에도 비슷한 톤앤매너의 감성이 갖춰진 느낌.



헤리티지 빌딩의 공용 공간
헤리티지 빌딩의 공용 공간
헤리티지 빌딩의 스위트룸
헤리티지 빌딩의 스위트룸


헤리티지 빌딩은 신관과 달리 공용 공간 위주로 ‘호방하게’ 사용됐다. 모든 대중들에게 굉장히 접근성 좋게 개방된 높은 층고의 홀은, 누구든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여럿 배치되어 있어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호텔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바, 다이닝 등 호텔의 상징적인 공용 공간이 중심이 되고, 객실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클럽’이라는 이름의 소수 올-스위트로 제한적으로 배치됐다. 이는 역사적 건축을 과도하게 분할하거나 기능적으로 소모하지 않고, 공간의 원래 스케일과 위계를 유지하려는 선택. 헤리티지 스위트룸은, 예전 건축물의 창문 스타일로 인해 오히려 시원한 뷰는 부족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뷰가 제한적이어도 훨씬 더 아름답고 풍부하게 느껴졌다.  그 외, 객실의 대부분은 신축 타워에 배치되어 현대 호텔이 요구하는 효율과 프라이버시를 충족한다. 탁 트인 스카이라인 뷰도 신축 룸에서 훨씬 즐기기 좋고, 호텔에서 가장 큰 프레지덴셜 스위트도 신축 빌딩에 존재한다.


월도프는 과거의 문법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최근 럭셔리의 기준이 ‘방의 크기’에서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설계했는가’로 이동한 흐름 속에서, 레거시를 현대적으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브랜드를 재정렬해 왔다. 역사적 오리지널의 복원”과 “현대 럭셔리의 질감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큐레이션하는 이 공간은 참 이야깃거리가 가득했던 경험.




신관과 구관 사이를 잇는 조식당
신관과 구관 사이를 잇는 조식당



재미있는 것은 서비스 철학에서도 월도프는 ‘True Waldorf Service’라는 이름으로 개인 컨시어지를 표방한다는 점이었다. 버틀러 서비스를 문의했더니, 공식적으로 버틀러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고 ‘프라이빗 컨시어지’를 전 객실에 제공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버틀러와 프라이빗 컨시어지는 뭐가 다를까? 기본적으로 버틀러는 24시간 응대, 컨시어지는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월도프는 컨시어지 서비스를 통해 투숙 전부터 체류 기간, 투숙울 마친 후까지 이어지는 일대일 접점을 강조해왔는데, 이는 기계적인 친절을 넘어 ‘예견되는 서비스(anticipatory service)’를 브랜드 언어로 제도화하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새롭고 트렌디한 럭셔리보다는 시간이 만들어낸 권위, 장소가 가진 기억, 그리고 의식처럼 반복되어 온 서비스의 태도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또 다른 프라퍼티에서도 만나게 될 독창적인 경험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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