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차로 배우는 세인트 레지스의 헤리티지, 애프터눈 티
- 8월 11일
- 3분 분량
1904년 뉴욕 사교계의 애프터눈 티가 12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발리에서 아이들을 위한 작은 티 파티가 되었다. 세인트 레지스의 헤리티지가 사랑스럽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방법.

세인트 레지스는 오랜 세월, 매일 반복해 온 ‘리추얼’이 많은 브랜드다. 매일 저녁을 시작하는 샴페인 사브라주, 각 지역의 개성을 담은 블러디 메리, 미드나이트 서퍼, 애프터눈 티처럼 오늘날 전 세계 St. Regis에서 이어지는 여러 의식은 세인트 레지스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과 사교 문화를 경험하게 한다.
어떤 배경에서 출발했을까 살펴보면, 1904년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Caroline Astor의 아들인 John Jacob Astor IV는 그해 The St. Regis New York을 열었고, 당시 호텔은 첨단 기술과 화려한 사교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럭셔리를 대표했다. 각 객실에 개별 전화기를 설치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시설을 갖추는 한편, 뉴욕 상류사회의 문화와 서비스를 호텔이라는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 St. Regis는 오늘날까지 이 1904년의 유산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무려 John Jacob Astor IV보다 한 세대 앞선 Caroline Astor를 보면, 이 헤리티지가 더욱 명확해진다. 19세기 후반 뉴욕의 Gilded Age를 대표하는 사교계 인물이었던 Caroline Astor는 당대의 명사와 예술가, 정치인, 사업가를 자신의 사교 모임으로 초대했고, 그녀의 이름은 뉴욕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녀가 까다롭게 제한해 초대한 사교계 인사들은 ‘400’이라고 불리며, 프라이빗하게 차를 마시는 모임이나 자정의 식사, 갈라 행사 같은 자리를 통해 뉴욕 사교 문화의 틀을 형성했다. 지금도 St. Regis가 애프터눈 티와 미드나이트 서퍼를 대표적인 리추얼로 계승하는 이유도 이 배경에 있다.
지금도 전 세계 St. Regis는 애프터눈 티를 중요한 요소로 다루는데, 각 지역과 고유의 문화에 맞게 애프터눈 티를 새롭게 해석해 선보인다. 형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핵심은 같다. 오후 어느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어, 차와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과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런던식 애프터눈 티의 형식을 그냥 따르는 것이 아니라 뉴욕 Astor 가문의 사교 문화에서 시작된 하나의 생활 방식을 이어 가는 셈이다. 모이고, 대화하고, 같은 시공간을 함께 나누는 공감의 자리.


벌써 거의 20년을 바라보고 있는, 2008년 문을 연 The St. Regis Bali Resort도 마찬가지다. 세인트 레지스에서는 현재 ‘Family Traditions’라는 글로벌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 여행객, 특히 어린 손님을 위한 경험을 핵심적인 브랜드 가치로 운영한다. 장난감을 몇 가지 구비해 둔 키즈클럽을 만들어 둔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맞는 문화와 놀이, 호텔의 헤리티지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여행 온 지역의 가치와 문화를 경험하고, 놀이의 즐거움을 발견하도록 한다. 체크인 카운터 옆의 아이들을 위한 책 큐레이션도 인상깊었고, 키즈 클럽의 프로그램으로 직접 농장에서 모종을 심어 보는 경험도 흥미로웠다.

그 중 가장 St. Regis다운 경험이 바로 ‘Tiny Afternoon Tea’다. 일반적인 애프터눈 티를 어린이용으로 축소한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아예 설계 자체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구성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즐기기 어려운 아이들의 습성(?)을 고려해 라운지의 테이블에 앉히는 대신, 티 세트 전체를 객실이나 빌라로 가져온다. 빌라의 정원이나 실내에 귀여운 티피 텐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세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롤리팝 케이크와 동물 모양의 컵케이크, 도넛 타워, 밀크쉐이크와 코코아 같은 메뉴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도 힐링이었다.

그 날 밤에는 세인트 레지스 테디 베어도 침대에 놓여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한 권씩 들고, 과자와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직접 경험해보니 이 방식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어린이도 어른들의 문화를 따라 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애프터눈 티는 때로 아이들에게는 꽤 허들이 높은 경험이다. 공용 공간에 상당한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하고, 차를 마시며 어른들의 예절을 형식적으로 따라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험은, 헤리티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선의 높이를 낮췄다.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편하고 달콤한 시간이었다. ‘함께하는 시간’의 중요함이라는 문화적인 습관을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경험했다.

St. Regis가 내세우는 슬로건 중, ‘Live Exquisite’이라는 말이 있다. 그냥 어른들이 좋은 경험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전통을 통해 가장 사랑하는 공동체가 함께 새로운 여향지를 경험하고 오래 기억할 순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예전의 Caroline Astor가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차를 마시고 저녁을 나누며 관계를 만들었다면, 현대의 St. Regis는 그 개념을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공동체로 다시 되돌려 물리적인 시간을 갖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이 식사를 하면서도 각자 스마트폰 화면만 스크롤하고, 분리된 삶을 사는가? 같이 차를 마시고, 귀여운 도넛을 몇 개나 먹어도 되는지 실랑이하고,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지금 더욱 중요해졌다.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 방식도 비슷할 것이다. 1904년의 전통을 기계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 맞게 끊임없이 다시 바꾸고 적응시켜 나가는 것. 뉴욕 상류사회의 애프터눈 티가 120여 년 뒤 발리 누사두아의 한 빌라에서 아이들을 위한 도넛 타워와 밀크셰이크, 작은 티피 텐트로 변신할 줄이야. 여전히 그 안에는 맛있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함께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평범한 본질이 남아 있다. 이 평범해 보이는 시간이 예쁜 추억이 되는 것. The St. Regis Bali Resort의 Tiny Afternoon Tea는 세인트 레지스라는 오래된 럭셔리 브랜드가 자신의 헤리티지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사랑스럽고 영리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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