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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다이닝으로 만나는 상해의 차오저우 요리, Selection By Du

  • 작성자 사진: Julia Lee
    Julia Lee
  • 11월 19일
  • 6분 분량

차오저우(조주; 潮州) 요리는 신선도, 절제, 발효와 브레이징의 기술, 차 문화 등이 쌓여 형성된 섬세한 미식 세계다. 화려한 양념 없이도 식재료의 맛과 향을 정확히 끌어올리는 능력, 복잡한 조리 기술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미학,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진 생활의 지혜가 녹아 있다.





차오저우 요리. 딱 듣자마자 익숙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차오저우는 (홍콩이 포함된) 광둥성의 일부다. 홍콩보다 살짝 더 동북쪽에 위치한 - 중국 남부 광둥성의 동쪽 끝, 차오저우(Chaozhou)를 중심으로 한 차오산(Chaoshan) 지역은 오래전부터 ‘알 사람은 다 아는’ 미식의 성지로 여겨져 왔다. 행정구역으로는 차오저우·산터우·제양 세 도시를 묶어 부르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테오체우(Teochew) 사람이라고 부르고, 말도, 음식도, 생활 방식도 광저우나 홍콩과는 미묘하게 다른 자신만의 문화권을 형성해 왔다. 이런 배경 속에서 발전한 차오저우 요리는 오늘날 동남아, 대만, 홍콩까지 퍼져 나가 독립된 미식 계보로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차오저우 요리를 경험한 것도 싱가포르의 고급 중식당에서였으니, 그만큼 중국 문화와 밀접한 본토 외 국가들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퀴진이다. 특히 많은 차오저우 사람들이 동남아와 해외로 이주하며 자신들의 요리 문화를 가져갔고, 오늘날 동남아 여러 음식에는 차오저우의 기술과 맛이 깊게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차오저우 요리는 한 지역의 전통 음식이 아닌,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살아 있는 미식 문화로 평가된다.


어떤 특징이 있을까? 역사적으로 차오산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지 않고 평지가 적어 대규모 농업이 어려운 환경이었다. 대신 강과 바다, 하천이 만나는 지형적 특성 덕분에 각종 어패류, 채소, 콩류를 섬세하게 활용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동시에 중국 남부(대만 가까운 쪽) 푸젠 남부와 해상 교역이 활발해 남방 해양 문화의 개방성과 실용성이 음식 전반에 스며들었다. 이러한 배경은 차오저우 요리의 정체성을 광둥식 요리와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게 했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차오저우 요리를 완벽히 광동식 요리와 선 그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지역도 너무 가깝고, 모든 문화라는 것은 교류하며 발전하기 때문에 일부 요리는 광동식 느낌과 차오저우 요리의 느낌이 유사하기도 하다. 그 부분을 생각하며, 요리의 맛을 느끼고 머릿속에 이 퀴진에 대한 이미지를 저장하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배우며 노력 중이다.)


차오저우 요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방식은 “기름기와 양념을 최소화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드러내는 매우 절제된 조리”다. 일반적인 중식의 강한 불맛, 무거운 소스, 달고 짭짤한 양념과는 다르게 차오저우 셰프들은 간단한 양념과 적은 기름, 정교한 불 조절을 사용한다. 찜, 데치기, 포칭, 은은한 브레이징 같은 기술을 통해 식재료의 향과 질감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 절제된 조리법은 맛을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 미묘한 층위를 쌓아 올리는 데 집중한다.


차오저우 요리의 상징적인 기술 중 하나는 루수이(卤水; braising master stock)라고 불리는 장조림 육수 문화다. 간장과 향신 채소, 향신료, 때로는 말린 해산물까지 더해 만든 갈색의 조리장은 한 번 만들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끓이고 식히고 새로운 재료를 더하며 수년, 때로는 수십 년 동안 이어진다. 이런 루수이에 거위, 오리, 돼지고기, 두부, 내장 등을 넣어 천천히 조리한 뒤 차갑게 식혀 얇게 썰어 내는 루웨이는 간이 세지 않으면서도 깊고 우아한 향을 지니며, 고기와 껍질, 지방의 질감이 모두 또렷이 살아 있다. 차오저우 사람들의 오랜 기술과 미학이 응축된 조리 방식이다.


해산물은 차오저우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핵심이다. 이 지역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형 덕분에 다양한 어패류가 풍부했고, 이를 가능한 한 살아 있는 상태의 신선함으로 즐기려는 문화가 발달했다. 대표적으로 생으로 절여 먹는 해산물 문화가 있다. 게, 새우, 조개 등을 양념장에 짧게 혹은 일정 시간 재워 날것에 가까운 상태로 즐기는 방식으로, 바다 향과 숙성에서 오는 감칠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육류에서는 소고기와 거위, 오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이들의 가금류 사랑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 최근에는 차오산식 소고기 샤브샤브가 중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데, 맑고 가벼운 육수에 다양한 부위의 소고기를 아주 얇게 썰어 넣고 단시간에 데쳐 고기의 식감과 지방, 풍미를 직접 느끼게 한다. 국물은 고기의 맛을 돕는 배경이 되고, 주인공은 늘 재료 그 자체다.


차오저우 식문화에서 죽과 맑은 탕도 빼놓을 수 없다. 차오저우식 죽은 걸쭉한 광둥식 콘지와는 달리 거의 물처럼 흘러가는 질감이며, 한 입 한 입이 부드럽고 매우 담백하다. 이 죽은 반찬들과 함께 조화롭게 먹는 기본 베이스의 역할을 하며, 식사 전체를 부담 없이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맑은 탕은 재료의 감칠맛을 기름기 없이 뽑아내는 기술로, 셰프의 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차오저우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차 문화권이기도 하다. 강렬한 향과 맛을 지닌 우롱차를 작은 잔에 여러 번 나눠 마시는 공푸차 문화는 음식과 함께하는 중요한 요소다. 차는 기름기와 잡맛을 정리해 주며, 차오저우의 절제된 미식 감각을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


디저트 문화 역시 독특하다. 밤늦게 야식과 함께 가볍게 먹는 작은 디저트들이 발달해 있으며, 토란을 으깬 디저트는 단순하지만 밀도 깊은 풍미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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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오저우 요리의 정수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곳, 상해의 Selection by Du에 다녀왔다. 차오저우 요리의 전통적 기술을 충실히 기반으로 하되, 맛의 구조를 보다 세련되게 정리하고, 현대 다이닝의 속도감과 풍미 밸런스를 탁월하게 조율하는 재해석이 돋보인다.


먼저, 식사는 은은한 향을 지닌 펑황 단총(凤凰单枞) 우롱차로 문을 열었다. 차오저우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차 문화의 본거지이며, 단총차는 이 지역의 생활과 미식 전반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단총차의 섬세한 꽃향과 차오저우식 주전자 조절 방식은 입맛을 깨워내는 동시에, 이후 등장할 담백하고 투명한 해산물 중심의 요리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준다.



차갑게 준비되는 전채 요리들은 차오저우 요리의 ‘직선적이면서도 정교한 맛’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계다. 루수이로 조리한 거위 간과 거위발은 차오저우의 대표적 기술이자 상징인 루수이 문화를 보여준다. 루수이는 간장·향신 채소·향료들을 균형 있게 조합한 깊은 갈색의 조리액으로, 장인의 손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풍미의 층위가 그대로 배어 있어 한 입만으로도 차오저우 요리의 뿌리를 체감할 수 있다.



이어지는 산뜻한 식감의 장추우 샐러리 절임, 매콤하게 살짝 향을 입힌 죽새(razor clam), 네 손가락 도미와 가리비를 얹은 섬세한 타르트, 차오저우식 절임 채소와 해파리, 그리고 차오저우식으로 절임한 블루 크랩은 각각의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조미를 최대한 배제한다. 특히 차오저우식 게장은 간장이나 당류 없이 해산물의 감칠맛과 절제된 간만으로 풍미를 이끌어내며, 이 복합적인 짠맛과 바다 향이 차오저우의 정체성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



차오저우 요리에서 탕(汤)은 또 하나의 핵심이자 자부심이다. 선명한 감칠맛을 내면서도 기름기 없이 깨끗한 국물을 뽑아내는 기술은 차오저우 셰프의 실력을 결정짓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 식당의 진주 육·가리비 맑은탕은 바로 그 정수에 가깝다. 맑고 투명한 국물 속에서 단백질의 감칠맛이 조용하게 퍼지며, 재료가 가진 ‘결’과 ‘단맛’이 혼탁함 없이 드러난다. 일본의 고급 오스이모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맛의 방향성은 훨씬 더 차오저우적이다—은근한 단맛과 감칠맛이 동시에 밀려오되, 어떤 향신료도 과하게 앞서지 않는 조화의 형태를 갖는다.



메인 코스에서는 차오저우 요리가 가진 풍부함과 절제의 균형이 더욱 뚜렷해졌다. 차오저우식으로 조린 생선 부레 요리, 안남 공어(An Nam fish maw)는 식감이 거의 젤라틴처럼 투명하고 부드러운 말린 부레가 닭육수·해산물 감칠맛과 만나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어 커다란 차오저우 로컬 소라(conch)을 직화로 구운 요리는 바다향이 진하게 살아 있는 조리법이며, 단단한 조개류를 과하게 조리하지 않고 수분을 지켜내는 차오저우의 기술이 돋보인다. 20년 묵힌 귤 껍질, 천피(陳皮, aged tangerine peel)와 흑두시(豆豉)로 찐 청어(青衣)는 광둥식 찜 요리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섬세한 향과 신선한 재료의 조화로움. 오랜 세월 숙성된 천피가 주는 부드러운 시트러스 향이 생선의 기름기와 만나 놀라운 균형감을 만든다. 겨자잎과 볶아낸 호주산 와규도 풍부한 맛이었고, 지금 가을 겨울에 제철을 맞은 상하이의 털게 내장 소스에 조린 철갑상어 힘줄, 닭육수 속에서 바삭함을 유지한 푸닝 두부, 차오저우식 소스로 볶아낸 청가지까지 이어지는 흐름에서는 산도·감칠맛·기름감·식감의 대조가 절제 속에서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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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30년 숙성된 차오저우식 무말랭이 밥(老菜脯饭)은 차오저우 사람들의 일상적 식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요리다. 차오저우 무 장아찌는 10년, 20년, 길게는 50년까지 숙성시키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대해 궁금증이 들어 이 장아찌에 대해 찾아보았다. ‘라오 차이 파우(老菜脯)’라고 부르는 이 장아찌는 집안의 세월과 정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특별한 발효 식재료다. 한국인이 상상하는 일반적인 무말랭이나 장아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무를 거의 돌처럼 건조시킨 뒤, 소금과 함께 세월 속에서 천천히 숙성한다. 이 과정이 워낙 정교하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제대로 된 老菜脯은 지역에서도 귀하게 여겨지고, 특히 20년·30년 이상 된 것은 약재에 가까울 만큼 가치가 높아 고급 요리나 선물 문화에서 특별하게 취급된다.


老菜脯이 처음 만들어질 때 가장 중요한 단계는 건조다. 싱싱한 무를 여러 번 햇볕에 말려 수분을 거의 완전히 없애는데, 이는 부패를 일으키는 미생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전통적인 지혜다. 수분이 적을수록 식재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발효는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장기 보관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바짝 말린 무를 소금과 함께 항아리나 두꺼운 토기 용기에 담아 어두운 곳에 저장해두면, 그때부터 무의 시간이 시작된다. 토기 항아리는 미세하게 숨을 쉬면서도 외부 공기와 습기를 차단하여, 내부를 아주 안정적인 발효 환경으로 만들어준다. 온도 변화가 심하지 않고 건조한 장소에 두면, 무의 감칠맛 성분은 서서히 응축되고, 소금과의 화학적 변화가 천천히 일어나며 깊은 풍미가 쌓인다.


왼쪽은 3년 숙성, 오른쪽은 30년 숙성 라오차이푸(老菜脯)
왼쪽은 3년 숙성, 오른쪽은 30년 숙성 라오차이푸(老菜脯)

세월이 5년, 10년을 지나면서 무는 점점 더 진한 흑갈색으로 변하고, 고유의 향은 한약재나 흑설탕을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띠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장아찌처럼 향이 거칠거나 짠맛이 강하지 않고, 오히려 짭조름한 감칠맛과 은근한 단맛, 그리고 발효에서만 나오는 구수한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직접 향을 맡아보니 은근히 향기롭고 꽃 같은 느낌이 났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그 식감이다. 말렸다가 숙성된 무는 단단하지만 씹을수록 젤라틴처럼 부드럽게 풀리는 독특한 질감이 있으며, 오래될수록 그 깊이는 더 강해진다. 그래서 조주 요리에서는 ‘조금만 넣어도 요리 전체의 맛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가진다.


무가 수십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식재료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조주식 발효 무는 처음부터 장기 숙성을 목표로 만들어지며, 수분 제거–고염도–전통 항아리–안정된 저장 환경이라는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에만 오래 보관해도 안전하고 풍미가 살아난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무말랭이나 장아찌는 제조 방식이 다르기에 30년을 버틸 수 없지만, 여기서는 지역 특유의 기술과 기후, 생활문화가 오랜 세월 축적된 결과물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다.


이 장아찌는 볶음밥에 잘게 다져 넣어 풍미의 핵심으로 쓰기도 하고, 맑은 탕에 한 조각 넣어 감칠맛을 더하거나, 죽에 살짝 섞어 깊은 향을 더하기도 한다. 한 조각 안에 오랜 시간 농축된 풍미와 문화가 담겨 있고, 입안 가득 퍼지는 오래된 흑설탕 같은 달콤함이 인상적. 이번에 경험한 볶음밥에서는 장아찌의 깊은 단맛과 감칠맛이 쌀알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여운과 깊이가 훌륭했다.


마지막 디저트인 계화(桂花)·백합·닭두리미로 만든 달콤한 탕은 차오저우식 디저트 특유의 가벼움과 꽃 향의 온기를 담아, 긴 여정을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식후에 제공되는 생 푸얼차는 차오저우의 차 문화와 연결되는 또 하나의 고리로, 단일 메뉴의 완성도뿐 아니라 식사 전체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 지역의 철학이 담겨 있다.


식사를 즐기며 차오저우 요리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한눈의 화려함으로 압도하기보다는 최상의 재료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조율하고, 풍미를 겹겹이 쌓으며, 시간과 기술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변주를 통해 깊이를 완성하는 요리랄까. Selection by Du는 차오저우의 미학을 가장 정제된 형태의 파인다이닝으로 선보이는 곳. 앞으로 더 많이 배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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