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객가요리 (Hakka Cuisine) 와 베이징 1스타 하카 퀴진 Zijin Mansion

  • 4월 2일
  • 4분 분량

이주하는 사람들의 음식에는 ‘어떻게 더 맛있게 먹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기는 것 같다. 중국의 객가요리(Hakka cuisine - 하카 퀴진)을 보면, 역사와 시간이 함께 찾아낸 답변이 전해진다. 특정 도시에 정착해 발전해 온 세련된 미식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친 이동과 정착, 그리고 반복된 생존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음식이 객가요리의 중요한 정신을 구성한다.


객가요리, 하카 퀴진
객가요리, 하카 퀴진


객가인들은 본래 중국 본토 북방에서 시작해 전쟁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광둥 동부의 메이저우, 푸젠 서부, 장시 남부 등지에 정착하며 각 지역의 기후와 식재료에 적응해왔고, 그 과정에서 음식 역시 끊임없이 변화했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은 기준이 있다. 재료를 낭비하지 않을 것, 오래 보관할 수 있을 것, 그리고 노동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영양적일 것. 이 세 가지 원칙은 오늘날까지도 객가요리의 핵심을 이룬다.




광동이나 사천 지방의 요리처럼 세계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중국 요리와는 다른 인상이다. 객가요리는 본질적으로 저장과 농축의 요리다. 소금에 절이고, 발효시키고, 말리고, 오랜 시간 조리는 방식들이 자연스럽게 중심이 된다. 이는 단순히 보존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풍미를 깊게 만드는 전략이기도 하다. 짠맛은 분명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기름은 많지만 느끼하게 남지 않으며, 발효의 향은 강하지만 균형을 해치지 않는다. 입안에서 즉각적으로 화려하게 퍼지는 맛보다, 씹을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구조를 지닌다. 진한 풍미의 저장 채소가 육류를 조리하는 데에도 폭넓게 활용되며 객가요리 특유의 맛을 만든다.




객가요리의 대표 매채구육(梅菜扣肉)
객가요리의 대표 매채구육(梅菜扣肉)


이러한 특성은 대표적인 요리인 매채구육(梅菜扣肉)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절인 겨자잎인 매채(梅菜)를 오랜 시간 삼겹살과 함께 조려내는 이 요리는, 객가요리의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다. 돼지고기의 풍부한 지방은 천천히 녹아들며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고, 매채는 그 기름을 흡수하며 짠맛과 은은한 산미, 그리고 발효의 깊이를 더한다. 단순히 ‘기름진 고기 요리’가 아니라, 저장 식재료와 육류를 결합해 맛의 균형을 설계한 결과다. 투박하지만 또 그 속에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안정된 맛이랄까. 어쩌면 객가요리를 파인다이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운 이유가 된다.


또 다른 축은 ‘속을 채우는 기술’이다. 객가요리에서는 이를 ‘양(釀)’이라 부르며, 다양한 재료에 다진 고기나 생선살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양도부(釀豆腐)다. 두부라는 부드럽고 비교적 담백한 재료에 다진 돼지고기를 채워 넣고 조리함으로써, 단백질과 풍미를 동시에 보강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를 채울 때 두부와 고기의 비율, 수분감, 그리고 조리 후에도 형태를 유지하는 구조까지 계산된다는 점이다. 값비싼 재료 없이도 완성도를 높이는 이 방식은 객가요리의 실용성과 한계 속에서 탄생한 기술적 정교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양(釀)’ 방식은 두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지(釀茄子), 고추(釀辣椒), 심지어 여주(釀苦瓜)까지 다양한 재료에 적용된다. 각각의 재료는 고유의 쓴맛, 단맛, 혹은 향을 지니고 있으며, 속재료와 결합되면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객가요리는 재료 하나를 완전히 바꾸기보다, 그 구조를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객가요리의 소금구이 닭 염배계(鹽焗雞)
객가요리의 소금구이 닭 염배계(鹽焗雞)


조리 방식 또한 매우 특징적이다. 염배계(鹽焗雞), 즉 소금구이닭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닭을 소금의 열과 압력을 이용해 익히는 이 요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내부의 수분을 유지하면서 풍미를 응축시키는 매우 정교한 조리법이다. 향신료를 과하게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닭 자체의 맛을 극대화하는 이 방식은, 객가요리가 지향하는 ‘재료 중심의 농축된 맛’을 잘 보여준다.


또 다른 대표 요리인 홍먼육(紅燜肉)이나 객가식 족발 조림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간장, 소금, 설탕, 그리고 긴 시간의 조림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 요리들은 재료의 조직을 부드럽게 풀어내고 깊은 감칠맛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고기는 젓가락으로 쉽게 풀릴 정도로 부드러워지면서도, 맛은 흐트러지지 않고 응축된 상태를 유지한다.






객가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식감’이다. 이들은 단순히 부드럽고 연한 식감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드러움과 탄력, 그리고 밀도를 동시에 설계한다. 예를 들어 수판자(算盤子)는 토란이나 전분을 반죽해 주판알 모양으로 만든 뒤 볶아내는 음식으로, 쫀득하면서도 씹는 맛이 분명한 독특한 식감을 가진다. 이처럼 객가요리는 맛뿐 아니라, 입안에서 느껴지는 물리적인 경험까지도 중요하게 다룬다.



직접 만들어 본 레이차 / 베이징 월도프 아스토리아 Jijin Mansion
직접 만들어 본 레이차 / 베이징 월도프 아스토리아 Jijin Mansion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묵직한 육류 중심의 이미지와 달리 객가요리에는 식물성 기반의 전통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레이차(擂茶)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식사에 가까운 문화로, 차잎과 곡물, 콩, 채소 등을 함께 갈아 만든다. 여기에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먹는 방식은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며, 음식이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 사회적 행위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객가요리는 지역에 따라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광둥 메이저우 지역에서는 보다 전통적인 형태가 유지되는 반면, 푸젠과 장시에서는 산지 식재료와 기후에 맞춘 변형이 이루어진다. 홍콩에서는 객가 마을을 중심으로 차과(茶果) 같은 전통 간식과 의례 음식이 이어져 왔고, 대만에서는 보다 정제된 형태로 발전했다.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로 이동한 객가 공동체는 현지 재료와 결합해 새로운 요리 문화를 만들어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타우푸(釀豆腐, Yong Tau Foo)는 이러한 변주의 대표적인 결과다.


이 모든 흐름을 종합해 보면, 객가요리는 구체적인 하나의 지역을 기반으로 정형화된 ‘스타일’보다는 이동 과정에서 달라지며 세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재창조되며 변화해 온 결과물이다. 이동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문화가 담겨 있고, 각 지역의 환경과 만나 끊임없이 재해석된 음식인 셈이다. 시간과 저장, 그리고 균형을 통해 완성되는 맛.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체와 삶의 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음식. 흥미로운 요리다.




< Zijin Mansion > Waldorf Astoria Beijing


베이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내에 위치한 광동/하카 요리 다이닝 지진 맨션. 이 레스토랑이 더 흥미로운 이유는, 그 다소 투박할 수 있는 하카 요리를 지금의 파인다이닝 문법 안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셰프는 한국 미식가들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다. 과거 Four Seasons Hotel Seoul에서 미쉐린 1스타, 유 유안(Yu Yuan)를 이끌었던 인물이고, 현재 이 레스토랑 역시 오픈 이후 6년 연속 미슐랭 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하카 요리로 미쉐린 스타를 받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방문할 이유가 된다.


이번에 경험한 메뉴를 보면 그 방향성이 꽤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베리코 차슈나 차 훈연 치킨처럼 비교적 익숙한 요리들도 있었지만, 인상 깊었던 건 오히려 발효와 저장에서 오는 깊은 풍미였다. 예를 들어 피클링한 죽순과 소고기를 함께 볶아낸 요리는 산미와 감칠맛이 강하게 부딪히면서도 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고, 매실채를 곁들인 돼지갈비 역시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낸 농도가 중심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조금 더 거칠고 진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맛이다.


소금에 절여 구워낸 비둘기 다리도 훌륭. 하카 요리 특유의 보존 방식이 만들어낸 응축된 풍미가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졌고, 단순히 식재료의 질감이나 조리 기술을 넘어선, ‘시간이 만든 맛’이라는 인상이 분명하게 남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로컬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어쩌면 투박할 수도 있는 음식들을 어떻게 지금의 레스토랑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렇게 정제된 형태로 풀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사실 전통이 어디까지 유지되어야 하고, 어디서부터 재해석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 사이에서 ‘맛있다’는 감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같은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경험이었다. 만약 베이징에서 조금 더 깊이 있는 식사를 원한다면,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중국 요리의 또 다른 결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곳은 충분히 시간을 내서 방문해볼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이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