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되는 디저트: 오사카 콘래드 호텔, '무대 mudae' 저스틴 리 셰프
- 3월 12일
- 5분 분량
서울의 JL Dessert Bar로 디저트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 파티시에 저스틴 리가 콘래드 오사카에서 전채부터 마지막까지 디저트로 구성된 코스를 선보인다. 오사카의 하늘 위 작은 카운터에서 펼쳐지는 그의 새로운 무대, MUDAE.

오사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요도강 위로 겨울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오후, 나카노시마의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콘래드 오사카의 로비에 들어서면 도시의 공기가 갑자기 한 단계 가벼워진다. 호텔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40층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 창 너머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풍경은 이 공간이 단순한 레스토랑 이상의 경험을 예고한다. 바로 이곳, 콘래드 오사카의 레스토랑 C:GRILL 내부에 마련된 작은 카운터 공간에서 한국의 파티시에 저스틴 리(Justin Lee)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은 MUDAE. 한국어로 ‘무대’를 뜻하는 이 단어는 단순한 네이밍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디저트가 하나의 공연처럼 펼쳐지는 공간,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셰프와 손님이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경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스틴 리는 서울에서 JL Dessert Bar를 통해 이미 독창적인 디저트 세계를 구축해온 셰프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레스토랑에서 커리어를 쌓은 뒤 서울에 자신의 이름을 건 디저트 바를 열며 그는 기존 파인다이닝의 구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는 코스의 마지막 장식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디저트가 식사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JL Dessert Bar에서 선보인 그의 작업은 익숙한 요리를 디저트로 재해석하는 위트와 창의성으로 많은 미식가들에게 기억되었다. 카르보나라를 아이스크림과 크림 구조로 풀어낸 디저트나 치즈와 초콜릿, 알코올의 향을 겹겹이 쌓아 만든 디저트들은 단순히 달콤한 마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요리처럼 읽히는 작품이었다.
이번 MUDAE 프로젝트는 그가 그동안 구축해온 철학을 일본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장하는 작업이다. 콘래드 오사카가 제안한 이 프로젝트의 구조는 독특하다. 레스토랑 안에 또 하나의 레스토랑을 만든다는 콘셉트 아래 C:GRILL 내부에 9석 규모의 카운터 공간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전채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디저트로 구성된 코스를 선보인다. 일반적인 레스토랑의 흐름에서 디저트는 종종 식사의 마지막 장면으로 등장하지만 MUDAE에서는 그 순서가 완전히 뒤집힌다. 디저트가 식사의 중심이 되고, 한 접시 한 접시가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지며 전체 코스를 구성한다. 손님은 그 장면들을 차례로 경험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카운터 앞에 앉으면 이 공간이 왜 ‘무대’라고 불리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셰프와 팀은 손님과 같은 높이에서 디저트를 완성하고 설명하며 때로는 가볍게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바텐더처럼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손님이 사진을 찍을 때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유연한 분위기의 뒤에는 철저한 디테일이 숨어 있다. 카운터 위의 동선, 도구의 배치, 접시가 등장하는 순서, 설명의 톤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공연처럼 정리되어 있다. 저스틴 리에게 무대는 화려한 퍼포먼스 이전에 기본적인 태도에서 시작된다. 정갈하게 정리된 테이블 세팅, 깨끗하게 관리된 공간, 손님과 눈을 맞추는 방식까지 모든 요소가 무대를 구성하는 장치가 된다.

MUDAE의 디저트는 흔히 말하는 ‘달콤한 코스’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저스틴 리의 접근 방식은 재료의 본질적인 단맛을 끌어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에게 단맛은 설탕이나 과일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채소에도 단맛이 있고 버섯에도 감칠맛과 단맛이 존재한다. 이러한 감각을 바탕으로 그는 세이버리와 스위트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흐린다. 초콜릿과 치즈를 중심으로 리큐르, 향신료, 과일, 알코올의 향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은 디저트의 구조를 마치 하나의 요리처럼 확장시킨다. 그래서 그의 디저트는 종종 익숙한 요리를 떠올리게 한다. 카르보나라 디저트가 그 대표적인 예다. 베이컨, 치즈, 크림이 만들어내는 풍미를 아이스크림 구조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맛을 전혀 다른 형태로 경험하게 만든다.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긴장감,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유머가 그의 디저트 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이번 프로젝트가 일본에서 진행된다는 점 역시 의미가 크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디저트 문화가 가장 깊게 뿌리내린 나라 중 하나다. 백화점 식품관에서부터 전문 파티세리까지 다양한 세대가 자연스럽게 디저트를 즐긴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디저트를 중심으로 한 코스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MUDAE를 찾는 손님들은 코스를 천천히 즐기며 페어링 음료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을 빠르게 이동하며 여러 곳을 경험하는’ 소비 방식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한 공간에 머물며 경험을 깊게 즐기는 일본 특유의 식문화는 MUDAE의 구조와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저스틴 리가 일본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는 일본 요리를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 셰프로서 일본 재료를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한다. 나라현의 코토카 딸기, 일본의 시트러스 과일인 분탄 같은 로컬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도 그 재료들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다.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서의 작업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젤라틴이나 유제품 같은 기본 재료의 특성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프랑스 버터를 주로 사용했지만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유제품을 사용하게 되면서 레시피를 다시 조정해야 했다. 이러한 변화는 셰프에게 새로운 실험의 계기가 되었다.
저스틴 리에게 MUDAE는 단순한 해외 프로젝트의 의미 이상이다. 일본과 프랑스는 오랫동안 세계 제과의 중심으로 여겨져 온 나라들이다. 그런 환경에서 한국 셰프가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선다. 그는 이 경험을 커리어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바라본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다시 바라보고, 더 넓은 시선으로 요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사카의 밤하늘 아래에서 펼쳐지는 이 작은 카운터 무대는 지금 그의 디저트 세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Interview with Justin Lee
Q. ‘MUDAE’라는 이름을 ‘무대’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도쿄 팀과 함께 이름을 고민하면서 발음과 어감까지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무대’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가 좋았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경험이 공연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죠.
Q. 전채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디저트로 구성한 코스입니다. 디저트만으로 한 끼의 리듬을 어떻게 설계하셨나요?
보통 파인다이닝에서는 디저트가 두세 가지 나오지만 그걸 따로 먹으러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저는 디저트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디저트를 가장 잘 알고 즐기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백화점에 가도 다양한 연령대가 스위츠를 즐기죠. 그런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이런 콘셉트가 가능하다고 봤어요. 서울의 JL Dessert Bar는 알라카르트 중심이지만 여기서는 모든 손님이 코스를 먹고 페어링 음료와 함께 디저트를 즐깁니다.
Q. 한 접시를 하나의 ‘장면’으로 본다고 했을 때 좋은 장면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저는 초콜릿을 디저트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콜릿에는 단맛, 신맛, 쓴맛, 우마미가 다 들어 있어요. 커피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초콜릿과 치즈를 베이스로 레이어를 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위에 리큐르나 스파이스, 과일을 올리면서 맛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바의 특성상 퍼포먼스도 중요합니다. 청결과 정돈된 공간, 단정한 태도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무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세이버리와 스위트의 경계를 넘는 작업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모든 재료에는 단맛이 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단맛을 찾죠. 그 단맛이 꼭 설탕이나 과일에서만 오는 건 아닙니다. 채소나 버섯에도 단맛과 감칠맛이 있어요. 그런 재료의 단맛을 끌어내면 자연스럽게 세이버리와 디저트가 연결됩니다.
Q. 익숙한 식재료를 재해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맛을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카르보나라 디저트는 베이컨과 치즈, 양파에서 오는 미묘한 단맛을 아이스크림 형태로 풀어낸 것이죠. 익숙한 맛에서 오는 재미와 낯섦에서 오는 새로움이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Q. 한국과 일본 고객의 디저트 경험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국은 공간 소비의 비중이 높습니다. 여러 장소를 빠르게 이동하면서 경험하죠. 일본은 한 공간에 오래 머무르며 코스와 음료를 천천히 즐깁니다. 그런 문화가 디저트 코스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Q. 일본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저는 한국 셰프니까 한국인의 시선으로 일본 재료를 보고 싶습니다. 나라현의 코토카 딸기나 분탄 같은 로컬 식재료를 많이 사용해보고 있습니다. 동시에 재료의 차이 때문에 레시피를 많이 수정해야 했습니다. 유제품도 홋카이도 제품을 사용하면서 맛의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Q. 이번 프로젝트가 셰프님의 커리어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일본과 프랑스는 제과의 강국입니다. 그런 나라의 특급 호텔에서 한국 셰프로서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동시에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경험이 제 커리어를 돌아보고 더 넓은 시선으로 요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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