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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펄 가이드, 중국의 미쉐린

  • 작성자 사진: Julia Lee
    Julia Lee
  • 11월 28일
  • 6분 분량

중국 본토의 미쉐린 가이드, 혹은 “중국인이 만든 미쉐린”이라고 불리는 레스토랑 리스트가 있다. 바로 메이투안(Meituan)이 발행하는 블랙펄(黑珍珠) 레스토랑 가이드다. 1다이아부터 3다이아까지 등급을 나누는 구조 자체는 미쉐린 가이드와 비슷하고, 동시에 중국 로컬 미식 문화에 훨씬 밀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요즘 중국 미식업계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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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이닝 씬을 들여다볼 때 참고할만한 가이드, Black Pearl가 뭘까. 중국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가다 보면, 입구에서 여러 번 마주치게 되는 이 명패가 궁금해졌다. 블랙펄 가이드가 무엇인지,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급은 어떻게 나뉘는지, 또 중국 밖의 도시는 어디까지 포함되는지까지, 처음 접하는 사람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풀어본다.


중국 음식 문화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중국 요리, 블랙펄 가이드

블랙펄 레스토랑 가이드는 중국의 거대 라이프 플랫폼인 메이투안(Meituan)이 2018년부터 매년 발행하는 레스토랑 가이드다. 출발점은 명확하다. “프랑스 기업이 만든 미쉐린이 아니라, 중국인의 입맛과 식문화 기준으로 고른 ‘중국인의 미식 리스트’를 만들자”는 것.


그래서 블랙펄은 처음 기획 단계부터 “중국인의 맛, 중국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기준”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미쉐린처럼 연 1회 발행, 도시별 선정, 3단계의 최고 등급(여기는 별 대신 다이아몬드)을 두는 구조를 채택해, 자연스럽게 “중국판 미쉐린”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미쉐린과 비슷한 점도 많다. 먼저 미쉐린 스타처럼, 다이아몬드 등급을 제한다. 3스타에 비견되는 3다이아는 블랙펄 최상위 등급으로, 블랙펄에서 정의하는 문구는 “인생에서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레스토랑(一生必吃一次)”. 단순히 ‘맛있다’를 넘어, 공간, 서비스, 상징성까지 포함해 “인생 버킷리스트급”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다음으로 2다이아는 “기념일·중요한 날에 가야 할 레스토랑(纪念日必吃)”. 데이트, 프로포즈, 부모님 회갑, 중요한 비즈니스 디너 등 특별한 순간에 어울리는 곳들을 이 구간으로 묶는다. 마지막으로 1다이아는 가장 폭이 넓은 상위 레스토랑군이다. “모임·회식에 선택하기 좋은 레스토랑(聚会必吃)”. 여전히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우수한 레스토랑들이고, 미식 경험, 서비스, 공간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블랙펄이 등급 자체를 “소비 상황”과 연결해 설명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쉐린의 “여기를 가기 위해 여행할 만한 가치가 있다”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 대신, 블랙펄은 소비자가 실제로 리스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좀 더 직관적으로 제안한다.


그리고 미쉐린 셀렉티드 레스토랑처럼, 블랙펄 리스트에는 1–3다이아 외에도 “입선(入围) 레스토랑”이 존재한다. 최종 다이아몬드 숫자에 들지는 못했지만 평가 대상으로 선정된 곳들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레스토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만, 일반 소비자에게 공개되는 메인 리스트에서는 주로 1–3다이아 등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쉐린과 달리, 우리는 인테리어도 공식적으로 평가해"

블랙펄은 공식적으로 평가 기준을 세 가지 축으로 정리한다. 표현은 발표 연도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항상 동일하다. 첫째는 요리, 둘째는 서비스, 셋째는 전통. 미쉐린도 요리를 평가하지만 공식적으로 서비스나 인테리어는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블랙펄은 서비스와 인테리어, 프라이버시 등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전통을 반영했는지에 대한 평가 항목도 있다.


먼저 요리와 출품(烹饪出品) 항목에서는 맛의 완성도와 균형감, 재료 선정의 적절함과 품질, 조리 기술, 익힘, 조합의 창의성과 메뉴 구성의 짜임새와 일관성을 본다. 그리고 서비스와 공간, 전반적인 경험(服务与环境 / 用餐体验)을 통해 홀 서비스의 전문성, 친절함, 언어 대응 능력, 와인과 술, 티, 논알콜 페어링 등 음료 서비스의 수준, 인테리어, 음악, 조명, 좌석 간 거리, 프라이버시, 테이블웨어 등이 평가되며 손님이 앱에서 정보를 찾고, 예약하고, 도착해 식사하고, 계산 후 떠나는 순간까지의 모든 경험의 흐름을 포괄한다.


흥미로운 점은 전통과 문화의 계승, 그리고 혁신(传承与创新)을 명시적으로 평가한다는 점. 해당 레스토랑이 다루는 지역 요리 혹은 중식의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그 전통적 뿌리를 얼마나 존중하며,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지가 중요한 평가 요소다. 잔치 문화, 비즈니스 접대 문화, 가족 미식 문화와 같은 중국의 식문화를 어떻게 표현하고 발전시키는지가 중점적으로 고려된다. 서양적인 파인다이닝 포맷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광둥·사천·상하이·닝보 등 각 지역의 요리 뿌리를 이해하고, 현재 중국 소비자의 취향과 글로벌 미식 트렌드를 동시에 담아내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럼 누가 평가할까? 크게 블랙펄 가이드 운영팀, 음식 전문가들로 구성된 블랙펄 이사회, 일반 소비자 위주의 익명 평가원으로 구성된다. 먼저 메이투안의 가이드 운영팀은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실무 조직이다. 메이투안 직원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가이드를 위해 평가 기준을 설계하고, 데이터 분석, 도시별 후보 리스트 정리 등을 담당한다.


그리고 공신력 있는 식음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블랙펄 이사회(理事会)가 있다. 각 지방 요리의 권위 있는 셰프, 미식 평론가, 음식 문화 연구자, 소믈리에, 티 마스터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의사결정 기구다. 이사회는 평가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고, 익명 평가원들이 제출한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도시별·등급별 리스트를 최종 조정·승인한다. 시상식에서 등장하는 “블랙펄 위원회/이사회 위원”들이 이 그룹에 해당한다.


그리고 수가 가장 많은 익명 평가원(评委)이 있다. 이들이 실제로 레스토랑을 방문해 식사하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들이다. 공식적으로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이들 중 대략 70~75% 정도는 외식업과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없는 “경험 많은 미식가·일반 소비자”들이다. 나머지는 셰프, 소믈리에, F&B 업계 전문가들이 소수 포함된다. 신분은 비공개이며, 이해 상충이 발견되면 즉시 배제하고 다시는 평가원으로 쓰지 않는다는 규정도 명시되어 있다.


실제 평가 방식은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진행된다. 먼저 후보 리스트 선정한다. 그 어떤 가이드도 온 세상 레스토랑을 다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렇기에 어딜 방문해 평가할지를 선정하는 것 부터가 중요하다. 메이투안·다중뎬핑에 쌓여 있는 방대한 데이터(예약수, 리뷰수, 사용자 평점, 객단가, 지역 분포, 성장세 등)를 활용해 “후보군”을 뽑는다. 하지만 데이터는 후보를 좁히는 보조 수단일 뿐, 최종 결정은 전문가 평가가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음으로는 익명으로 방문해 레스토랑을 평가한다. 평가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보통 손님처럼 예약·방문해 식사를 한다. 그래서 앞서 설명한 세 가지 평가 기준(요리, 서비스·환경, 전통·혁신)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정성적인 코멘트를 작성한다. 한 레스토랑에 대해 여러 평가원이 복수 회차로 방문하는 방식을 원칙으로 하며, 결과는 통합·보정된다. 다만 방문 횟수나 인원 수의 세부 숫자는 비공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최종 심의와 공증 결과를 거친다. 이사회와 심사위원단이 모여 도시별 후보, 다이아몬드 수준, 입선 여부 등을 조정하고 최종 리스트를 확정한다. 절차의 공정성을 위해 외부 회계·컨설팅 기관이 참여해 심사 프로세스를 검증·공증하는 것도 공식적으로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블랙펄 측은 늘 “전문가 평가 + 빅데이터”라는 이중 구조를 내세운다. 미쉐린이 철저히 내부 기준과 평가원에 의존하는 반면, 블랙펄은 중국 최대의 외식 플랫폼이 가진 데이터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에 종속되지 않도록 전문가 위원회를 별도로 두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블랙펄 레스토랑 가이드는 2018년 첫 에디션을 시작으로 매년 한 번씩 새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생각보다 그렇게 역사가 깊지 않은 가이드인 셈이다.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2025년 기준으로는 8번째 가이드가 나왔고, 보통 연초에 “올해의 블랙펄” 리스트와 함께 공식 시상식을 연다. 매년 발표 때마다 블랙펄 역시 미쉐린과 마찬가지로, “등재된 후에도 꾸준히 수준을 유지·발전시키는가”를 중요하게 본다. 한 번 선정됐다고 영구 보장이 아니라, 해마다 재평가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리스트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단위이면서도 도시별, 블랙펄 가이드

블랙펄을 이해할 때 헷갈리기 쉬운 부분이 “전국 리스트인가, 도시별 리스트인가?”라는 점이다. 구조적으로는 “전국(혹은 중국+해외 일부)의 단일 가이드” 안에 “여러 도시 챕터”가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2025년판을 보면 총 34개 도시, 370여개 레스토랑이 선정되었다. 중국 본토의 핵심 도시들(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청두 등) 뿐 아니라, 홍콩·마카오·타이베이 같은 중화권 도시, 그리고 도쿄·방콕·싱가포르와 같은 해외 도시까지 포함된다.


발표와 시상식 장소도 매년 바뀐다. 상하이, 마카오, 우시, 난창 등 중국 각 도시를 돌다가, 최근에는 싱가포르에서 첫 해외 시상식을 열며 “중국에서 출발한 글로벌 레스토랑 가이드”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블랙펄은 처음부터 “중국인의 미식 나침반”을 지향했다. 중국인의 해외 여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인이 많이 찾는 해외 도시의 레스토랑”도 블랙펄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초창기에는 도쿄, 파리, 뉴욕 등 일부 해외 도시가 포함되었다가, 코로나로 인해 일부 도시가 한동안 제외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시아에 다시 집중하면서 도쿄, 방콕, 싱가포르 같은 도시가 본격적으로 포함되고, 2025년 기준으로는 해외 3개 도시(도쿄, 방콕, 싱가포르)가 블랙펄 도시로 공식 포함되어 있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블랙펄이 첫 해외 시상식을 이곳에서 열면서 “중국·중화권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미식 가이드로 확장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졌다.


메이투안은 자사의 서비스 및 파트너 네트워크가 이미 수많은 해외 상점·도시에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장기적으로 블랙펄과 자사 “머스트 이트 리스트(必吃榜)”를 중국인 해외 여행객의 대표적인 레스토랑 레퍼런스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내놓고 있다.


블랙펄은 다이아몬드 등급 외에도 매년 몇 가지 상징적인 어워드를 시상식에서 함께 발표한다. 대표적인 어워드는 연도 셰프상 (年度主厨奖 / Master Chef Award), 영 셰프상 (年轻主厨奖 / Young Chef Award), 시그니처 요리를 선정하는 연도 요리상 (年度菜品奖)이 있다. 특히 메뉴를 수상하는 요리상은 전통적인 맛의 뿌리를 잘 살리면서도 놀라운 창의성을 보여준 요리들이 주로 대상이 되며, 이 상을 계기로 요리 자체가 하나의 상징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중국판 미쉐린, 앞으로는 어떨까

블랙펄은 자주 “중국판 미쉐린”이라고 불리지만, 두 가이드는 출발점과 시선이 서로 다르다. 몇 가지 큰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평가 관점이 다르다. 미쉐린은 프랑스에서 시작한 글로벌 가이드로, 기준이 세계 어디서나 동일하다. 이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럽 중심의 미식 관점”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블랙펄은 애초부터 “중국인의 입맛과 중식 문화”를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다. 중국식 잔치 문화, 비즈니스 접대, 가족 중심의 미식 경험 등, 중국 소비 패턴이 평가 기준 속에 깊이 녹아 있다.


그리고 블랙펄이 레스토랑 스펙트럼이 약간 더 넓은 느낌. 미쉐린은 여전히 상당수가 고가의 파인다이닝에 집중되어 있다. 블랙펄도 현실적으로 객단가가 높은 집들이 많지만, 중국 각 지역의 상징적인 중식 레스토랑, 하이엔드 로컬 다이닝, 그리고 일부 해외 도시의 비중식 파인다이닝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중국 지방 요리의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데이터 활용 방식도 다르다. 미쉐린은 내부 평가원과 기준이 철저히 비공개이며, 외부에서 접근 가능한 데이터와 연동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반면 블랙펄은 메이투안·다중뎬핑의 방대한 예약·리뷰 데이터를 반영하면서도, 최종 판단은 전문가 위원회와 익명 평가원의 평가로 내리는 “전문가 + 빅데이터” 모델을 취한다. 중국 내 레스토랑들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미쉐린 별을 따느냐”만큼이나 “블랙펄 다이아몬드를 몇 개 받았느냐”도 중국 시장에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로컬 베이스로 확장해 가는 블랙펄 가이드,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며 변화할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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