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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마스터 소믈리에 김경문 인터뷰



햇살이 따사로운 초 여름, 뉴욕현대미술관 (모마 MoMA ) 1층에 자리한 프렌치 레스토랑 더 모던 THE MODERN 에서 김경문 소믈리에를 만났다. 와인업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최초의 전문 자격 시험, 코트 오브 마스터 소믈리에 Court of Master Sommelier 시험에 합격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1969년부터 영국에서 시작되어 약 50년간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 까다로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불과 230여명 남짓,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조차 찾기 어려운 시험이다. 앞서 3단계의 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응시 자체가 불가능한 이시험은 매해 합격률이 한 자릿 수, 2016년에는 전 세계에서 단 3명만이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 그만큼 와인업계의 무시무시한 전설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이 연례 시험에 2012년 재미 교포인 하윤석(Yoon Ha)씨가 합격한 바 있지만, 대한민국 국적으로는 김경문 소믈리에가 최초다.


김 소믈리에의 긴 여정은 요리학교에서부터 시작한다.

처음에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셰프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미국 CIA에 진학한 그는 요리 수업도 즐거웠지만 와인 수업에서 더큰 흥미를 느껴 와인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그렇게 와인 분야로 진로를 결정한 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오랜 시간 공부를 병행해온 것이 좋은 결실을 맺었다.


“레스토랑에서는 정말 하루 종일 앉을 새 없이 일을 하니까, 피곤한 것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제 자신 스스로 도전하는 것이 좋았어요. 매일이 똑같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웃음) 내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연구하고, 와인을 맛볼 때에도 한 병의 와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고··· 이런 도전이 힘들지만 오히려 더 재미를 주고, 저를 깨어있게(activate) 하는 것 같아요.”



 





마스터 소믈리에 응시는 언제부터 준비하셨나요?


이 시험을 보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3단계의 시험은 2012년에 합격했고, 2014년부터 마스터 소믈리에 응시를 시작했어요. 마스터 소믈리에 시험은 3개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와인 이론을 먼저 통과해야 서비스와 테이스팅 시험을 볼 수 있어요.


레스토랑에서 매일 일을 하다 보니 서비스나 테이스팅은 자연스레 연습하게 되지만, 시간을 내야 하는 이론 시험 준비가 정말 어려웠어요. 매일 12시간씩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 녹초가 되는데,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밤에 2시간 정도라도 공부하고, 또 아침에 일어나서 3시간정도 책을 보고. 정말 일과 공부만 한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안 하면,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라 1년 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할 힘이 생겼던 것같아요.


 

블라인드 테이스팅 시험*이 궁금해요.

25분 동안 6종의 와인을 정확히 맞히고 설명해야 한다니, 시간이 아주 짧게 느껴지는데요.

블라인드 테이스팅 시험 : 와인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6종의 와인을 맛보고 25분 동안 설명하고 맞히는 시험


소믈리에는 본질적으로 서비스를 하는 직업이라 시간 제한에늘 민감합니다. 고객들이 한없이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는 상황에서도 빠른 시간 안에 그 와인을 파악해 설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와인의 어떤 특성이 어떻게 그런 결론을 이끌어냈는지 설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포도의 특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테이스팅 센스도 갖춰야 합니다. 그런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한 맛과 향을 통해 거꾸로 유추해 맞히는 것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기본이죠. 그래야 소믈리에가 레스토랑에서 좋은 와인 리스트를 구성할 수 있기도 하고요.



 


전 세계 모든 와인이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상은 아닐 텐데, 기준이 있나요?


시험에 전 세계의 모든 와인이 랜덤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오랫동안 와인을 만들어온 지역에서, 와인을 일관성 있게 특정한 스타일로 만들어온 것을 테이스팅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예컨대 그리스 와인 같은 경우는 마스터 소믈리에 블라인드 테이스팅 시험에 나올 확률이 낮은데, 와인 시장의 역사가 오래되긴 했지만 일관성이 조금 떨어지기 때문에 불공정한 시험이 될 수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물론 다른 세계 대회에는 출제될 수도 있지만요.


한편 매년 와인 시장이 발전하며 출제의 대상이 되는 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피노누아 같은 품종은 재배 지역이 넓어지며 캘리포니아는 물론 뉴질랜드나 칠레처럼 새로운 지역에서도 특징 있는 와인이 나오게 된 게 대표적이죠. 이렇게 출제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와인 시장이 다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10년 전 시험에 비해 난이도가 더 높아졌다고 생각해요.


지역이나 품종의 특성에 우선해 생산자의 개성이 많이 반영된 와인도 늘어나고 있어요.

맞아요. 최근 들어서 와인메이킹 스타일이 많이 변형되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는 부르고뉴나 보르도 스타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워낙 새로운 와인이 많아졌어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보르도와 캘리포니아 스타일이 서로 다른 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캘리포니아 생산자들이 강한 와인보다는 보르도처럼 밸런스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미국에 비해 기온이 들쑥날쑥한 프랑스는 캘리포니아 스타일을 받아들여 농익은 스타일을 추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중간 지점으로 수렴하는 것 같은 양상이에요. 그래서 어떤 와인들은 테이스팅을 했을 때 정말 구분하기가 어렵기도 하죠. 그래서 소믈리에로서 이런 섬세한 특징을 잘 인식하고 잡아내려고 트레이닝을 많이 합니다.








 


음식 맛을 보지 못하고 페어링을 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어렵지 않으세요?


셰프들과 작업할 때, 마지막 순간에 메뉴가 바뀌기도 하는데 좋은 소믈리에라면 모든 상황에 따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음식과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다른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많이 해보며, 조리법이나 음식 자체에 대한 이해를 쌓아야 해요. 그래야 셰프와 서로 의견을 나누며 좋은 페어링을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요리를 공부한 배경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와인을 추천할 때 요리와 어울리는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할 텐데,

고객의 성향도 고려 대상이 되나요?


물론입니다. 제가 보기엔 고객의 성향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음식과 와인이 매치된다고 해도 먹는 사람마다 맛을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소믈리에가 노련하게 상대의 마음을 읽고 와인을 추천해주는 것이 더 어렵지만 그만큼 맞춰나가는 즐거움이 있죠. 손님이 던져주는 작은 단서들을 점처럼 모아,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가는 것이 참재미있어요.


 



소믈리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요?


제 경험을 고객과 공유하고 싶다는 갈망이 늘 있습니다.

제가 왜 이 와인과 이 음식을 매치했는지, 저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싶어요. 서비스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큰보상은 손님이 그 마음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모습이거든요.

셰프가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 준비한 음식에, 제가 준비한 와인의 스토리를 함께 전달해주는 것이 서비스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음식을 가져다주고 와인을 오픈해서 따라주는 것이 서비스가 아니니까요.




 




다이닝을 할 때, 와인 비중이 어느 정도 된다고 보는지 궁금해요.


제가 한국에서도 1년 정도 일을 해봤는데, 의외로 한국에서는 식사할 때 와인을 잘 안 드시더라고요. 한편 한국에는 반주 문화가 있어서, 술을 마실 땐 꼭 음식을 곁들이잖아요?

하지만 그걸 저녁식사와는 별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녁은 술 없이 먹고, 술은 또 다른 곳에 가서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둘을 접목시켜서 저녁식사를 와인과 함께하는 문화가 활성화될 여지가 있다고 봐요.

제가 일하고 있는 여기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식사할 때 와인을 좀 더 편하게 마시는 것 같아요. 식사 시작 전에는 가볍게 칵테일이나 식전주(aperitif)를 하며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고, 메뉴를 결정하면서 그날 식사에 어떤 와인을 곁들일지도 함께 정합니다. 특별히 와인이나 술을 못 드시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거의 와인을 드시는 것 같아요.

가볍게 글라스 와인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3명 이상이면 병으로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고요. 좀 더 모험적인 고객들은 셰프에게 그날의 요리를 다 맡기는 테이스팅 코스처럼 와인 페어링을 시도하기도 하죠.



 


아뮤즈 부셰부터 디저트까지 단 한 병으로 쭉 페어링을 한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모든 음식과 두루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와인을 꼽는다면요?


샴페인이 정말 매력적인 와인이죠. 예전에는 샴페인 하면 그저 파티와 연관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사실 샴페인이야말로 그 지역의 테루아 Terroir, 땅의 느낌 를 가장 잘 표현하는 좋은 와인이라고 봐요. 예전에는 유명 브랜드의 샴페인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샴페인 종류도 참 다양해졌어요. 그로어 샴페인 Grower Champagne 은 생산자가 직접 자기 땅에서 재배한 포도로 양조한 샴페인인데, 예전에는 포도를 재배해서 큰 회사에 납품하던 형태와 많이 달라진 셈이죠. 브루고뉴 와인처럼 밭의 특성을 살려서 좀 더 특별한 샴페인을 만들 수가 있거든요.

샴페인은 종류도 다양해요. 샤르도네 Chardonnay 로만 만든 게 있고, 블렌딩도 있고, 드라이한 것부터 달콤한 스타일까지 가능성이 정말 무궁무진한 와인이에요. 그래서 샴페인으로 전체적인 디너 코스를 다 맞출 수도 있다고 봅니다.



 


와인에 관심이 많은 입문자들은 낮은 가격대의 와인부터 눈길이 먼저갈 텐데, 어느 정도 가격대부터 마셔볼 만한 괜찮은 와인이라 할 수있을까요?


저가 와인이라는 것이 참 애매한 표현이죠. 미국에서 소매 가격 기준으로 10달러 정도에서도 괜찮은 와인을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아래로는 퀄리티가 좋은 와인을 구하기는 힘들다고할 수 있어요. 단순히 비싼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포도 재배나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매년 일관된 품질의 괜찮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병당 10달러 이상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와인 애호가로서 와인을좀 더 즐기고 싶다면, 생산자의 철학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생각으로 와인을 만드는지, 어떤 비전이 있는지,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생산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것도 와인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음식과 페어링하기 좋은 와인을 소개한다면요?


한국 음식의 가장 특별한 점은 개인이 자기 입맛에 맞춤형으로 조절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서양 요리처럼 한 가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반찬을 다양하게 조합해 먹기 때문에 와인 페어링을 한 가지로 정하기가 어렵지만, 좀 더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해요. 마시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갈 수도 있겠죠.


제가 보기엔 강한 스타일의 와인이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칠레 와인 같은 경우는 가격대도 괜찮고, 스페인 와인도 충분히 매력이 있죠. 특히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의 가르나차 Garnacha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스파이시하기도 하고, 묵직하면서도 농축된 과일향이 특징이에요. 그곳도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지역이고 기후도 더워서 한국의 매콤달콤한 고기 요리와 페어링하기 좋거든요.



 


마지막으로 마스터 소믈리에에 도전하는 한국 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부탁드려요.


소믈리에로서 매일 와인을 다루고 고객을 만나면서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하나하나 디테일을 좀 더 갈고닦아 손님에게 좋은 서비스를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요리도 그렇겠지만 서비스야말로 손님을 위한 마음가짐과 겸손함이 가장 큰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한국 분들은 항상 공손하기 때문에 그것도 큰 장점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땐 한국 분들이 열정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한 분야에 빠져들면 쭉 밀고 나가는 성향은 큰 장점이 될 수 있어요. 제가 요리학교 있을 때에도 그랬지만, 어떤 레스토랑에 가도 한국 사람들의 열정에 대한 평가가 좋거든요. 열심히, 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정신으로 도전하면 충분히 잘 할 수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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