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전분야에서는 ‘비거니즘(Veganism)’ 열풍이 불고 있다. 유럽 중심으로 실천되어온 비거니즘은 전세계로 확산되었으며, 식생활에 한정되었던 실천 행동은 패션업계, 화장품업계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의 주체는 다름아닌 밀레니얼 세대로, 지속가능한 환경과 동물 윤리에 기반한 가치소비를 중시 여기는 그들의 소비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식품업계에서 비건 시장의 성장세는 주목할 만하다. 국제채식인연맹(IVU)에 따르면 전 세계 채식 인구는 1억 8천만 명(2017년 기준)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글로벌 식품업계의 움직임도 잇따른다. 완벽한 채식주의자, 비건(Vegan)들을 위한 100% 식물성 기반의 비건 요거트부터 채식을 선호하는 일반 소비자들을 위한 식물성 육류 혼합 제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제품을 출시하는데 한창이다. 비건식품의 다양화와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활발한 반응을 통해 앞으로 비건 문화는 전세계적으로 단순 트렌드를 넘어선 일상습관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측된다.
◆ 국내 식품업계도.. 비건식품시장에 주목
비건 식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한국에서도 뚜렷하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3%인 약 150만명이 채식 인구로 밝혀졌다. 그 중 비건 인구는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10년 전의 채식 인구, 15만명과 비교했을 때 10배 가량 성장한 규모다. 이에 주목하여 국내 식품업계에서도 다양한 채식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도 채식 열풍에 주목한다. 국내 식품회사 농심은 지난 10월 육류를 사용하지 않은 ‘강황쌀국수 볶음면’을 출시했다. 국내 편의점 프랜차이즈브랜드 CU에서도 11월달 100% 식물성 원재료로 만든 ‘채식주의 간편식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다. 기존 국내 인스턴트 시장 대부분의 제품이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없는 제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들의 변화는 ‘일상 속 채식이 어렵다’는 과거의 비건 공식을 깨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반응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괄목할 만하다. 국내 커머스포털 11번가의 작년 콩고기 매출은 전년 대비 17% 증가했으며 채식 라면은 11% 증가했다. 국내 신선식품 유통업체, 마켓컬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달걀과 우유 등을 넣지 않은 비건 베이커리의 매출이 전년 하반기보다 289% 증가했다.
◆ 일상 속 지속가능한 식습관을 실천하는 방법
우리가 흔히 부르는 채식주의자(vegetarian)는 크게 7가지로 분류된다. 완전 100% 채식주의자를 일컫는 비건, 유제품만 허용하는 락토 베지터리언, 계란 등 동물의 알은 먹지 않는 오보 베지터리언, 유제품과 동물의 알은 먹지 않는 락토 오보 베지터리언이 베지터리언의 개념에 속한다. 해산물까지 먹는 페스코 베지터리언부터 조류까지 먹는 폴로 베지터리언, 평소에는 비건이지만 상황에 따라 육식도 겸하는 플렉시테리언과 같은 세미 베지터리언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채식 개념이 어렵게 다가오는 이들이라면 일상 속 채식과의 접점을 갖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비건 개념에 가까워지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증가하는 채식 레스토랑, 채식 베이커리 등에서 비건 식품을 맛보거나 비건들을 위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채식 박람회 ‘비건 페스타’ 처럼 국내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과 접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들도 늘고 있다.
이처럼 채식과의 접점을 통해 일상 속 많은 이들에게 ‘지속가능성’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있다. 그 가운데 국내 최초 채식박람회 비건 페스타 1회에 비건 베이커리로 참가하며 지속가능한 베이킹을 선보인 비건 베이커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베지앙(vege-ang) 의 김아윤 파티시에를 인터뷰했다.

Q: 최근 들어 채식 열풍과 함께 비건 베이킹도 화제다. ‘비건 베이킹’이란 무엇인가.
비건 베이킹은 ‘일반 베이킹에서 많이 사용되는 유제품(우유, 버터 등)과 계란 등의 동물성 재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빵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일상에서 그동안 우리가 소비한 대부분의 빵들은 기본적으로 우유, 버터, 계란 등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불과 1-2년 전, 내가 베지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순수한 채식 베이킹을 선보이는 빵집들이 거의 없었으며 ‘비건 베이킹’이라는 개념도 국내에 보편화되지 않았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대중들은 비건 베이커리에 익숙하지 않았다.
비건 베이킹의 매력은 공식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 베이킹처럼 밀가루 400g에 베이킹파우더 3g 등을 넣어야 한다는 기존의 데이터가 없다. 우유 대신 식물성 우유인 두유, 귀리우유, 또는 캐슈밀크를 사용하고 버터 대신 비건버터와 코코넛 오일, 바나나를 사용하는 등 동물성 원료의 대안을 스스로 찾고 빵으로 만들기 때문에 자유롭다. 재료가 갖는 기본적 특성을 이해한 뒤에 많은 테스트와 경험을 거친다면 나만의 독창적인 비건 베이킹 레시피 하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비건 베이킹이 급부상하며 트렌드로 떠오른 것은 복합적인 결과물로 생각한다. 처음 국내에 등장했던 호밀빵, 통밀 식빵 등의 비건 빵들을 구매하고 선호하는 분들은 대부분 체중 조절 및 다이어트용으로 건강에 좋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개인적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소비의 실천에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비건 빵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처음 베지앙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비건 베이커리 시장의 규모를 비교해본다면 확실히 그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들이 증가했다고 본다.
Q: 비건베이킹과 지속가능성은 어떤 접점이 있다고 보는지.
우선 모든 재료를 식물성 원료에서 찾는 것 자체도 지속가능한 측면이다. 공장식 축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전 지구 배출량의 18%를 차지하고 있고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곡물의 3분의 1은 가축 사료로 소비되고 있다. 즉, 공장식 축산을 위해 필요한 자원과 이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다량의 이산화탄소들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속가능한 채식을 하면서도 맛있게 빵을 먹을 수 있는 대안을 소비자들에게 제시해주는 것은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지속가능한 먹거리, 비건 베이커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다. 비건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소비자의 지속가능한 건강과 농부의 지속가능한 생산, 그리고 지구의 지속가능한 보전을 유념할 수 있는 방안은 있다. 다양성 파괴를 낳는 유전자변형 GMO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 토종 식재료를 원료로 이용하는 것이 그 예다.

우리나라의 토종작물 가운데 베이킹의 원료로 사용했을 때 맛있는 재료들은 많이 있다. 토종 앉은뱅이 밀과 조경밀, 금강밀 등의 우리밀부터 가을이 되면 맛있게 익는 토종 밤과 베지앙에서 자주 활용하고 있는 제주산 시트러스까지.. 국내에서 덜 알려졌지만 알고보면 다 매력이 많은 식재료들이다. 지속가능한 생산을 꿈꾸는 생산자의 식재료를 찾고 베이킹에 활용함으로써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푸드 마일리지를 줄이는 것에 기여하는 것도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고 본다.
Q: 비건 베이킹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이 얘기를 하자면 매우 길다. 하지만 핵심은 슬로푸드와 베이킹의 접점이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자라 직접 수확한 농산물의 맛을 기억하고 이를 보존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여기에 대학생활에서 경험한 슬로푸드의 가치가 결부되면서 국내 농업에 기여하는 의식 있고 책임감 있는 베이커리 운영을 꿈꾸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조리, 서비스 경영학과를 다니며 큰 규모의 베이커리에서 베이킹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있었다. 약 1년 간 매일 무수히 많은 계란을 깨고 밀가루 포대를 옮기면서 ‘도대체 이 많은 계란들과 밀가루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하는 재료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있었다. 음식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본질적으로 내가 사용하는 식재료가 어디서, 어떠한 생산방식으로 온 것인지는 알고 만들어야 행복한 음식이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교에 다시 복학하여 들었던 슬로푸드 관련 수업에서는 농업에 대한 거시적 관점을 배웠고 농업리더장학재단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지역 곳곳의 농가에서 확고한 철학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고 계신 농부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과거 생각했던 막연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꿰매는 단추가 되었다. 또한 슬로푸드문화원에서 책임감있는 식문화를 대학생들과 교류하는 프로젝트, ‘소소소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과정도 내 고민의 깊이를 더해줬다.
Q: 비건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떻게 보면 베지앙은 빵을 사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불친절한 베이커리일 수 있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종이 포장을 사용하며 하루에 생산되는 베이커리의 양도 한정적이다. 많은 분들이 하루에 방문하셔도 하루 생산량이 제한적이라 모두에게 드릴 수 없을 때도 종종 있다. 가끔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택배 배송 문의도 오는데 푸드 마일리지를 줄이고자 하는 마음에 이 또한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다. 베이킹 과정부터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과정까지 전 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을 고집하다보면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일들이 있다.
초반에 특히 어려웠던 점은 베이킹에 들이는 시간, 노동 대비 생산되는 완제품의 양이 제한적인 것과 직접 만드는 식물성 원료들의 양만큼을 미리 계산하여 만드는 것이었다. 베이킹 원료는 거의 대부분 직접 만든다. 베이킹에 사용되는 두유는 1시간 정도 한 솥 가득 끓여 만들며, 사용되는 슈가파우더도 비정제설탕을 직접 갈아 사용한다. 아무래도 초반에는 이에 대한 요령이 없다 보니 다음 날의 재료를 준비하고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밤을 샌 적도 많았다. 지금은 1년 정도 운영하며 이에 대한 감을 많이 쌓았다.
Q: 비건 베이커리를 맛본 손님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베지앙을 오픈하기 전, 플리마켓을 통해 비건 빵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비건 베이커리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꽤 많았었다. 여기서 비건 베이커리가 대중적이지 않아도 분명 잠재적 니즈가 존재한다는 것을 캐치할 수 있었다. 오픈 전 인스타그램 팔로우도 2천 여명이었는데 이 때 올렸던 ‘지속가능성’ 관련 이야기들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지속가능한 베이커리, 베지앙을 오픈한 뒤로 꾸준히 인스타그램에서 나눴던 가치에 공감하고 오시는 분들도, 단골손님들도 늘고 있다.

신기한 점은 비건 베이커리임에도 불구하고 채식주의자가 아닌 분들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회기역 주변에 여러 대학교가 있어 다이어트 목적을 갖고 호기심에 방문하는 이들부터 단순히 맛있어서 찾는 이들까지 다양하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타 베이커리와는 다른 베지앙만의 ‘맛’이 있다고 얘기한다. 직접 원재료를 만들고 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지속가능성 가치와 연결점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기존에 없던 새로운 레시피를 연구하게 되고, 토종 식재료를 경험한 적 없는 소비자들은 이를 맛보며 익숙하지 않지만 맛있는 맛에 색다름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Q: 본인이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먹거리’란.
농업과 조리사의 접점을 이야기할 때, 농업을 자전거에 비유하곤 한다. 결국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소비자들과 농부들이 함께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데 그 매개체가 되는 것이 나와 같은 조리사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를 알고 조리사로서 농업의 지속가능성,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염두한다면 세상에 조금 더 많은 지속가능한 먹거리가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단적으로 지속가능한 먹거리에 반응하는 움직임이 크다. 마치 몸에 좋은 슈퍼푸드가 나오면 그 해 모두가 슈퍼푸드에 열광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 더 지속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개인적,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내가 소비하는 것이 자원 낭비로 이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도 사회에 의존하기 보다는 주체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똑똑한 먹거리 소비자가 되기 위해 무엇이 지속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얻어가는 것이 결국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는 길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다이닝미디어아시아 김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