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는 요리에 자신의 철학을 담는다. 그리고 그 요리를 맛보는 손님들은 단순히 맛을 넘어 셰프가 어떤 가치와 신념으로 재료를 선택했고 자신의 색깔로 표현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철학이 담긴 다이닝은 이를 선보이는 셰프에게도, 맛보는 우리에게도 짜릿한 순간이다.
최근 미식업계에서는 ‘지속가능성’의 가치에 주목하여 지속가능한 미식을 선보이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가치일지라도 미식의 정점을 선보여야 하는 셰프의 입장으로서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데오에서 지중해풍 퀴진 바탕의 지속가능한 레스토랑, 이타카(ITHACA)를 운영하는 김태윤 셰프를 만나 이에 대해 인터뷰했다.

Q. 셰프로서 ‘지속가능성’을 바라본다면.
‘지속가능성’은 본래부터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이었다. 때문에 현세대가 전분야에 걸쳐 이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지와 안일함 속에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런데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이유는 일상에서 이를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먹거리도 그렇다. 내가 먹는 것, 우리 가족이 먹는 것이 위협받고 있음을 일상에서 체감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먹거리의 지속가능성’에 관심 갖기 시작하지 않았나.
종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근 마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도 내가 늘 사 먹었던 생선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고, 그 크기 또한 작아지고 있지 않나. 뉴스에서 매년 들려오는 구제역 문제와 몇 년 전 있었던 달걀 살충제 파동도 우리 식탁이 현재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동안 우리 인간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무자비하게 생산해왔던 행위들에 대한 총체적 결과물이다. 그 결과 하나하나가 최근 몇 년간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나면서 원래부터 문제였던 부분이 마치 갑자기 등장한 문제처럼 인식되는 듯하다.
요리사들에게도 지속가능성은 당연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셰프로서 본질적 소양만 다해도 지속가능성과의 접점은 충분히 있다. 셰프 본연의 역할은 ‘기술자’다. 재료의 본질에 대해 숙지하고 반복된 훈련을 통해 좋은 재료로 좋은 요리를 만들면 되는 일이다. 본업에 충실한다면 자연스레 생산자와 소비자, 그 두 관계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산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철학과 감정을 음식에 담아낸다면 요리를 통해서도 지속가능성을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다.
Q.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어떤 특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지속가능성은 요리사로서 늘 직면해왔던 문제였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해오며 좋은 식재료를 찾는 과정을 밟았는데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항상 ‘환경’과 ‘지속가능성’이더라. 좋은 요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재료들이 환경에 부담되는 방식 혹은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길러진다면.. 과연 이들로부터 좋은 맛, 좋은 요리를 구현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어렵다고 생각했다. 좋은 요리를 하기 위해서, 좋은 식재료를 추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새롭게 ‘이타카’를 준비하며 접했던 자연과의 시간도 ‘지속가능성’을 한층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요리사가 재료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요리사가 주방을 벗어나 자연을 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주로 업장 안에서 배달된 식재료들을 요리로 풀어내고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점점 재료들의 본질, ‘자연’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졌다.

최근 ‘자연’을 많이 보고 느끼며 지속가능한 식재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수상레저가 취미다 보니 바닷속 아름다운 생물들을 보는 시간이 많은데, 여기서 느끼는 바가 크다. 바다에서 마주치는 아름다운 물고기를 본 이들이라면 혹여 그들이 고등어라 할지라도 이를 먹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식재료들을 대할 때 내가 바다에서 봤던 아름다운 생명으로 바라본다면 업장에서 식재료를 다룰 때도 보이지 않던 개념이 보인다. 단순히 식품으로서 바라봤던 식재료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생물, 생명으로 보이면서 이들을 좀 더 존중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Q. '육식'보다 '채식'이 지속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생산하는 방식에서 오는 문제지 이분법적으로 나눠 ‘육식은 비친환경적이고, 채식은 친환경적이다.’라고 구분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의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육식을 해도 친환경적으로 할 수 있다. 또한 채식이라고 ‘무조건 친환경적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일이다. 만약 환경에 부담이 되는 방식으로 생산된 채소를 먹는다면 이를 과연 친환경적인 식습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지는 방법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타카’는 채식 레스토랑이 아니다. 물론 채식주의자든, 육식을 선호하는 사람이든 그들의 취향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요리사의 입장에서 특정 재료에 편중한 식생활을 권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음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행복감을 다채롭게 누리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체 육류 비율 가운데 동물복지 차원에서 사육되고 있는 육류들이 있다. 물론 비율이 매우 낮아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재료 선택 권한이 있는 요리사가 노력한다면 충분히 육류로도 지속가능한 요리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고기 요리에서는 유기 축산 한우를 사용할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소들은 옥수수를 먹고 사육되지만, 본래부터 초식동물인 소는 옥수수가 아닌 풀을 뜯어 먹도록 설계된 생명체다. 옥수수 비육 방식은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마블링, 많은 근지방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간이 고안한 것이다. 이보다는 풀을 먹고 여유롭게 뛰놀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소들을 재료로 선택함으로써 조금이라도 환경에 덜 부담되고 동물 윤리에는 더 부합하는 요리를 할 수 있다.
Q.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 겪는 어려움도 많을 듯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지속가능한 요리를 통해 소비자의 인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소비자들의 고정된 입맛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맛있는 소고기를 떠올릴 때 그동안 높은 품질의 소고기에서 맛보았던 마블링 속 풍부한 지방의 맛을 기대한다. 반면 유기 축산 한우는 근내 지방률이 낮아 담백한 편이다. 소고기에서 지방의 맛을 기대하는 그들에게 아무리 좋은 철학을 갖고 생산된 소고기를 잘 숙성시켜 선보인다 한들 본 재료에 없는 지방의 맛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재료의 고정된 맛이 아닐 때, 그걸 맛있다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일을 하며 직면하는 ‘의외성’이 많다는 점이다. 농약과 비료의 힘을 빌려 농사짓는 농작물들은 어느정도 일정한 품질과 시기적으로 예측가능한 보급이 이뤄지지만 우리와 직거래하는 농작물들은 그렇지 않다. 계약한 농장들이 무농약 농법부터 자연 농법 등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재배하다보니 우리가 원하는 양의 채소들을 약속한 때에 수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생산자의 채널을 다각화하고 요리사의 대처능력을 기르는 등의 대안으로 계속 극복해나가고 있다.
Q. 일을 하며 느낀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앞서 어려움을 얘기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뜻하는 바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지표들 덕분이다. 지속가능한 레스토랑을 테마로 ‘이타카’를 운영한지 이제 1년 반 정도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에도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레스토랑을 방문해주는 대중들은 물론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미식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들도 힘이 된다. 무엇보다도 1:1 직거래 생산자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와 같은 지향점을 갖고 비슷한 세상을 꿈꾸는 생산자들이 예상보다 많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토종 식재료를 찾는 과정 속에서 이타카 팀 내부적으로 데이터들이 나날이 쌓이는 것도 하나의 원동력이다. 마트에 가서 먹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탄하다가도 야생 식재료를 채집하러 자연으로 갔을 때 처음 보는 생물들로부터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먹을 것이 많구나’라는 희망을 얻는다. 식재료로써 충분히 매력적인 생명체들을 새롭게 알아가고 이에 대한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그 데이터들을 잘 조합하여 우리 색깔의 요리로 표현하는 과정에도 깊이가 더해진다.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들이 가장 유의미한 데이터다. 사실 사계절에 따라 자연의 흐름이 어떠하고 그 속에서 어떤 작물들이 자라는지는 티비에서 다큐멘터리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감정적인 것은 어렵다. 생산자와의 관계, 그리고 목장과 농장들을 방문하여 만난 동식물과의 교감에서 느꼈던 그 순간의 감정들은 직접 자연을 찾아야 얻을 수 있다. 요리할 때 목부님이 보내주신 우유만 보아도 그분들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소에 대해 해주셨던 말씀들, 소들의 눈빛, 숨소리, 그리고 목장의 냄새까지 모든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Q. ‘지속가능성’은 ‘친환경’과 같은 개념으로 봐도 되는가.
이타카 팀은 ‘지속가능성’을 ‘친환경’과 동등한 개념이 아닌 이를 내포하는 더 큰 개념으로 본다. 우리가 업장에서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재료를 공수하고, 업장에서 남김없이 식재료를 활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환경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을 함께 논의한다. 지속가능한 요리에 있어 친환경만큼 중요시 논의되어야 할 것은 ‘관계’ 측면이 아닐까.

극단적인 사례지만 만약 요리사가 친환경적 요리를 하지만 업장에서 핍박을 받고 일한다면, 혹은 요리를 먹는 손님들이 생산자들의 수고를 생각하지 않고 먹는다면, 이는 지속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 즉, 생산자와 소비자, 요리사(레스토랑)가 서로 동등한 삼각관계를 유지하며 어느 관계 하나 빠지지 않고 비중 있게 고려되었을 때 비로소 지속가능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생산자와 요리사가 공유하는 가치는 소비자에게 요리로 잘 전달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다양한 농작물을 생산하는 생산자들도, 지속가능한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과 요리사들도, 지속가능성한 요리를 경험하는 소비자들도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지속가능성을 다방면으로 추구하다 보니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할 때 있어 해야 할 고민들도, 쓰이는 에너지도 많다. 최근 내부적으로 논의되었던 캡슐 커피 문제가 그 예다.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커피는 현재 공정무역 캡슐 커피지만, 캡슐이 재활용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환경적 부담이 되고 있다. 맛이 검증되지 않고, 공정무역 원두는 아니지만, 생분해성 캡슐을 사용한 친환경적인 캡슐 커피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업장에서 원두를 직접 갈고 커피를 내리기 위해 업장에 부담될지라도 새로운 노동력을 들여야 할지 등등 조금 더 지속가능성에 가까운 결정이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한다.
Q. 앞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그동안 이타카 팀과 함께 한 일들은 대부분 화려하게 발전된 미식 문화, 그 이면의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음식업계 종사자들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가치 있게 다뤄나가야 할 사안이다. 앞으로도 이를 위한 실천 방식들을 팀원들과 함께 모색하며 본질에 다가가려 한다.
또한 앞으로 업계의 많은 분들이 지속가능성을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속가능성의 실천을 단순히 환경문제로 좁혀 바라보는 것보다는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관계 문제, 종의 다양성 문제, 동물 복지 문제 등 우리가 그동안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 함께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이타카 내부적으로 지난 1년은 ‘지속가능한 레스토랑’을 구현하는 과정 속에서 마주한 어려움에 차근차근 적응해나가는 기간이었다. 오픈 초반보다는 팀원들 내부적으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 인지나 어려움에 대한 대응력 등 많은 부분이 성장했다고 본다. 앞으로는 우리가 쌓아온 데이터들, 경험들을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전달할 때, 확실한 우리의 언어로,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다이닝미디어아시아 김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