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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장 치즈의 멜로디를 듣다

안단테 데어리 김소영 인터뷰





안단테 Andante ,

‘느리게 또는 걷는 속도로’라는 음악의 빠르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산책하듯 천천히 빚어내야 치즈가 가진 저마다의 멜로디를 들을수 있다는 그녀의 말을 따라 장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아티장 치즈의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아티장 치즈’는 무엇일까.

단순히 소규모 생산을 한다고 해서 아티장 치즈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


아티장의 사전적 정의는 ‘손으로 만드는 수공 장인’이다.

개념적으로만 따지면 치즈 아티장은 치즈 제조에 특화된 장인이다. 전통적으로 팜하우스 Farmhouse 에서 소나 양, 염소와 같은 가축을 길러 그 젖으로 치즈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지역에서 재능 있는 사람 몇몇이 치즈 생산에 두각을 나타내며, 반경 10km 정도 한정되는 좁은 범위의 지역 농장에서 가축의 젖을 받아 치즈 생산에만 전념하는 ‘치즈 공방’이 탄생했다. 목축업과 치즈 생산을 병행하던 사람들이 아예 치즈 전문 장인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아티장 치즈라고 일컫는 것들은 바로 이런 곳에서 생산된 치즈다.


프랑스는 콩테 Comté 와 같은 로컬 치즈에 AOP 인증 제도가 적용되어, 원유의 생산지가 법적으로 한정된다. 그래서 아티장 치즈는 단순히 로컬 치즈가 아니라, 극도의 로컬(Extremely Local) 치즈다. 치즈 생산자를 중심으로 지역 농가가 이어지고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로 흘러가는 것까지 모두가 아티장 치즈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 이처럼 지역이 한정되면 치즈에도 특유의 테루아, 즉 땅의 느낌이 물씬 담긴다. 아티장에 따라 자신의 철학은 모두 다르지만, 전통과 호흡하고 자연을 담아내는 것만큼은 모두 공통일 것이다.





 

지역과 장인,

즉 공간과 사람이 모두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모든 치즈 생산 시설이 현대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티장 치즈에도 100년 전에 비하면 현대적 설비가 많이 적용됐다. 하지만 지역에서 생산된 우유만을 사용했다고 해도, 대량생산 설비를 통해 만든 치즈는 아티장 치즈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본과 설비가 전제되는 치즈에는 우유 상태부터 치즈 포장까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다. 공장에 가면 사람의 역할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해진 규칙에 따라 생산되는 치즈의 상태를 체크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장점을 꼽자면 소비자 입장에서 안정적인 맛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아티장 치즈는 보다 확장된 수공업 형태다. 여전히 포장 작업까지 사람의 손길과 검수를 거치는 것. 이렇게 하는 이유는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량생산 치즈가 일정한 맛(Uniformity)을 안전하게 제공한다면, 아티장 치즈는 계절에 따른 변화(Seasonality)를 담아내는 것에 목표가 있다. 이 치즈에 빠져드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계절성, 즉 시즈널리티의 아름다움이다. 지역과 자연환경, 계절, 당시의 감성을 치즈에 담아내는 것이 우리 아티장의 작업이다.

계절과 자연이라는 개념이 치즈에 녹아들면, 치즈 하나를 살때에도 스토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계절 생산지의 날씨는 어땠는지, 당시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때론 와인의 좋은 빈티지처럼 예측해볼 수도 있고, 열 때 흥분감이 배가되기도 한다.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티장 치즈는 전적으로 지역 산물이다. 이젠 유통에 힘쓰는 젊은 사업가들이 많아진 덕분에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만든 치즈가 4일 만에 한국으로 배송된다. 이 작은 치즈 하나를 통해 그곳의 동물이 느끼는 감정과 아티장이 치즈를 바라보는 감각이 전달되며 지역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넓어진다. 그곳의 공기, 흙내음, 물소리까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치즈를 통해 연결되는 현실, 멋진 세상 아닌가.





 



계절에 따라 매번 치즈 맛이 달라진다면,

아티장 특유의 색은 어떻게 낼 수 있나?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있을 텐데… 훌륭한 와인 생산자는 포도 품종과 지역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적용해낸다.

품종이나 빈티지가 달라도 생산자의 캐릭터가 느껴질수 있지 않는가. 치즈 아티장도 지역과 자연, 계절을 한껏 담아내면서도 뚜렷한 본인의 색을 낼 수 있다.


와인이 샤르도네 품종이라도 싱그럽고 산미 가득한 것부터 묵직하고 오크 향이 풍부한 것까지 같은 포도라고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와인으로 완성되듯, 치즈도 같은 원유를 사용했더라도 다양한 캐릭터를 보인다. 그래서 한국에서 ‘카망베르’라고 할 때, 대중적으로 경험한 것보다 훨씬 무궁무진한 세계가 아티장 치즈에 펼쳐져 있다. 치즈에 걸음마를 뗀 사람이 ‘전 카망베르 같은 스타일이 좋아요’라고 하며 추천을 부탁하면, 헷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웃음)





 

한국에 더 많은 치즈가 소개되어야 할 것 같다.


이제 한국의 와인 수준은 해외 여느 도시가 부럽지 않을 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치즈는 아직갈 길이 멀다. 수십, 수백 만원에 이르는 좋은 와인을 마시면서 곁들이는 치즈 플레이트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정도다. 로마네콩티에 새우깡을 안주로 먹는 셈이다. 다이닝 문화는 음식이 좋아지고, 여기에 어울리는 와인의 격이 높아지고, 서비스 수준이 올라가는 등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한다. 그런데 한국의 유제품군은 이런 움직임이 훨씬 둔하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소공동에 위치한 웨스틴조선호텔을 기점으로 좋은 치즈 플레이트를 선보일 수 있도록 자문했다. 좋은 와인에 호기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정성이 담긴 치즈를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에서 프레시 치즈를 직접 생산할 수있도록 이번 방문 때 노하우를 제공했고, 틈틈이 관리하고 있다. 치즈를 즐기는 고객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함께 치즈 종류를 더 다양화하고, 언젠가는 모두 국내에서 생산한 것들로 치즈 플레이트를 꾸밀 수 있도록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와인이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10년 후에는 이 순간을 기억하며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한다.





 

국내에서 아티장 치즈의 미래는 어떨까.


한국의 농장을 다니며 희망을 느꼈다. 정말 정직하고 존경할 만한 우유 생산자들을 꽤 많이 만난 것도 고무적이다. 고창이나 철원에서 진정성 있는 공방 주인들과 인연을 맺을 기회도 있었고. 앞으로 이런 분들과 협업해서 프로마주 블랑처럼 프레시한 치즈를 시작으로 다양한 한국의 치즈를 만들어보고 싶다. 기술 전수도 하고, 장터에서 소비자들에게 직접 선보이며 이야기도 나누고.




 



아티장 김소영에게 치즈란 어떤 존재인지.


치즈가 참 의미가 많긴 한데… (웃음)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었다. 처음 치즈를 시작했을때 난 아무것도 몰랐다. 치즈 덕분에 삶을 풍요롭게 누리고 바라볼 수 있게 될 줄은. 과학, 철학이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내 손으로 치즈를 만들어내는 재미와 충만함이 삶을 이어가는 특별한 힘이 되었다. 치즈가 매개체가 되어 자연과 동물을 바라보고 농장을 가꾸고 셰프, 장인들과 친구가 되고… 이처럼 인생의 중요한 요소들을 발견하고 연결할 수있었다. 치즈는 내가 준 것에 비해, 나에게 선물을 가득 안겨준 고마운 친구인 셈이다.


살면서 사랑에 빠지고, 무언가를 동경하게 되는 데에는 별다른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 때론 어떤 우스운 계기로 그렇게 될 수 있다. 가슴속에 품은 내면에서 동기를 찾을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가고 돌이켜보아야 비로소 말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별 생각 없이 만나서 사랑에 빠졌어. 어쩌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되었네.’ 그게 바로 치즈와 나의 관계다. 모르는 것투성이에,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발전할 수밖에 없는 관계, 노력, 그리고 용기.


치즈 아티장으로서 세계를 바라보면 나의 파트너는 자연이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더 개방되고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다. 내게 치즈는 사업이라기보다는 행복을 주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오히려 사람들과의 사업적인 관계에서도 더 대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일화가 많았을 텐데.


한참 뒤에 프렌치 론드리 French Laundry 의 총괄 지배인인 래리 Larry 에게 내가 처음으로 치즈를 납품하던 시기에 손님들이 홀에서 반응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이름 없는 동양인이 만든 치즈를 최고급 식당에서 먹어야 한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포크를 들기조차 거부했다는 사람들. 셰프 토마스 켈러는 이 음식을 서빙하라고 하고, 고객들은 입에도 대지 않고… 홀을 담당하는 매니저로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어리고 겁 많던 시절, 그 말을 들었다면 울면서 좌절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꽁꽁 숨겨두었다가, 한참 뒤에 껄껄 웃으며 이야기해주던 래리를 보며 감동했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살면서 힘든 상황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 진정한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몸집이 말도 안 되게 조그만 아시아 여자애가 작은 치즈 박스를 들고 왔을 때부터, 프렌치 론드리에 안단테 치즈를 맛보러 손님들이 올 정도가 되기까지 20여 년간 함께 동반 성장해간다는 것. 그게 걸음을 걷듯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동지고, 친구고, 파트너인 관계다. 치즈도, 그 치즈를 통해 만난 사람들도 그렇게 천천히 안단테의 속도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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