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빛, 밤에 내려앉은 달빛처럼 그윽한 향기, 부드럽게 혀끝을 지나고난 자리에 맴도는 독특한 감칠맛까지… 사케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사케는 쌀의 전분질을 누룩으로 당화해 만든 양조주로, 어떤 지역의 쌀을 이용해 얼마나 도정을 하고 어떻게 발효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특색이 생긴다. 화사하고 산뜻한 시트러스 계열 아로마부터 풍성하고 온화한 코코넛과 바닐라 뉘앙스까지 와인 못지않은 다양한 향은 물론이고 쌀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달콤함과 우마미가 더해진 복합적인 맛으로 애주가들을 매료시킨다.
쌀로 빚어낸 또 하나의 예술, 사케! 일본의 각지방색과 테루아를 담아 더욱 독특한 사케의 세계에 빠져보자

사케의 지역색을 만드는 것들:
쌀, 물, 그리고 사람
사케는 쌀과 물을 재료로 양조자의 경험과 기술을 담아 만들어내는 술이다. 일본 각지의 술을 의미하는 지자케地酒에는 그 지역의 전통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쌀이 나고 자란 기후와 풍토, 그지역의 물맛, 오랜 전통과 사케 양조의 스타일이 어우러져 고유의 모습을 갖추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주민의 기호품으로 함께 발전해온 까닭에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식재료를 이용한 향토 요리와도 자연스레 잘어울리는 것은 물론이다.
쌀은 사케의 핵심 원료다. 아무 포도로 와인을 만들지 않듯 사케를 만드는 쌀도 적합한 특성이 있는데, 이를 ‘주조호적미’라고 한다. 도정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밥을 지어 먹는 일반 쌀보다 훨씬 씨알이 굵으며 기르기 까다롭고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다.
양조장이 위치한 지역의 쌀을 반드시 쓰란 법은 없지만, 전통적으로는 농사를 짓고 난 뒤 겨울 동안 향토 쌀을 이용해 술을 빚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떤 물을 쓰는지도 중요하다. 연수를 사용하면 부드러운 사케를, 경수를 사용하면 묵직한 바디감의 사케를 만들수 있다. 물에 포함된 미네랄 성분에 따라서도 사케의 맛과 향의 특색이 생긴다.
한편 이 재료를 바탕으로 술을 빚는 ‘양조자’는 어떨까? 사케 양조장의 리더인 도지의 주조 스타일에 따라쌀 도정률은 물론이고 누룩 첨가부터 숙성에 이르는 양조 과정에 사용되는 기술까지 많은 부분이 결정되므로 같은 지역에 있어도 양조장에 따라 각자의 개성이 매력적인 사케가 생산된다.
양조자의 개성과 지역의 전통을 살려 빚은 지자케는 기반한 지역의 쌀과 물이 사람의 손길을 만나 탄생하는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셈이다.

지역별 사케 특성
북해도부터 가고시마까지 지역별로 사케의 테루아가 다르다. 기온이 낮은 북부 지방은 대체로 저온발효 특성이 있어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우며 경쾌하고, 남부로 내려가며 기온이 높아질수록 사케 특유의 농후한 감칠맛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 각 지역의 풍토와 지역색은 고스란히 음식에 반영되는데, 바다가 가까우면 해산물이 풍부하고, 내륙 산간 지방은 간간한 절임 음식이 맛있다. 테루아를 담은 사케 또한 그곳의 향토음식과 가장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사진의 좌측부터)
최북단: 북해도
소복이 쌓인 눈이 녹아 맑은 물이 풍부한데, 한랭한 기후 특성상 저온발효를해 깨끗하면서도 적당한 감칠맛을 보이는 사케가 많다. 털게와 전 세계 최고 품질의 성게, 관자로 유명한 북해도.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해산물과 잘 어우러지는 사케가 매력이다.
단독으로 나서지 않고 담백한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은은함이 우아하다.
남산(오또코야마) 토쿠베츠준마이
북동부: 이와테
산지가 많고, 해안은 바위투성이인 지역이다. 대부분의 인구가 내륙 산간 지대에 거주하는데, 지리적인 특성상 절임류의 음식이 발달했다. 채소와 생선절임 모두 짭조름한 맛이 특징.
이곳의 사케는 단맛을 베이스로 묵직한 무게감을 주며 감칠맛이 입에 여운으로 남아 음식과 어우러진다.
남부비진 긴죠
중부 지방: 니가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 나오는 표현처럼, 겨울 내내 하얗게 눈이 내리는 ‘눈의 고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냉랭한 곳이 술 빚기에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며, 술 빚기 좋은 쌀인 ‘고햐쿠만고쿠’의 최대 생산지라고. 해산물과 농작물이 풍부해 저장 음식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담백하게 조리해 깔끔한 맛의 음식이 많아 곁들이는 사케 역시 담백하고 깔끔한 편이다.
쿠보타 센
중부 지방: 후쿠이
물맛이 좋으면 술맛이 좋다는 간단한 진리가 통하는 곳. 미네랄이 풍부한 백산수(하쿠산노미즈 白山水 )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술 빚기가 발달했다. 에치젠 소바와 은어구이부터 깊은 원시림에서 자생하는 흑버섯까지 담백하고 정갈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주는 음식이 유명하다. 명수로 빚어낸 이곳의 사케는 감칠맛이 뚜렷하고 투명한 느낌이 특징이다.
고쿠류 이핑
남부 지방: 교토
후쿠이 지방과는 달리 미네랄이 적고 부드러운 연수가 나는 곳. 그 영향으로 술도 은은한 단맛에 부드러운 질감이 혀를 감싸, 여성의 술이라는 의미의 ‘온나자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간이 강하지 않고 채소류를 주로 쓰는 교토식 요리 ‘교료리(京料理)’와의 마리아주가 자연스럽고 우아하다.
송죽매(쇼치쿠바이) 초톡센 긴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