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RYU HYUN JUNE, 2017 lamain


"우린 보여줄 것이 하나도 없어, 요리법도 얼마나 간단한데. 그냥 제철 나물 구해다가 간장, 된장, 소금만 넣고 조물조물 무쳐내면 그만인데 여기서 뭘 배울 게 있으려나.”

대전 영선사의 사찰음식 지도 법사인 법송 스님이 손사래를 쳤지만, ‘덜어낼 때 비로소 살아나는 음식’이라며 오히려 조셉 리저우드 셰프가 배움을 청했다.


한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지역색 강한 향토음식을 경험하고 배우던 호주 출신의 요리사 조셉을 매료시킨 것은 다름 아닌 사찰음식이었다. 화려한 솜씨로 재료를 지배하고 통치하기보다는 재료를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철학, 요리사로서의 자신을 내려놓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던 날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함께 대전 영선사를 찾았다. 땅의 기운을 한껏 품은 봄나물이 법송

스님이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을 만나 수채화처럼 맑은 느낌의 반찬으로 재탄생했다. 그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장으로 살짝 무쳐낸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 법송 스님의 꾸밈없이 소박한 봄나물과 조셉 셰프가 이에 영감을 받아 풀어낸 독창적인 요리를 만나보자.


조셉 리저우드 셰프는

호주 태즈메이니아 출신 요리사로, 런던의 The Ledbury 및 Tom Aikens 등 세계적인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다.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고 문화권을 경험하며 그곳의 영감을 풀어낸 팝업 레스토랑을 개최하고 있다. 2016년부터 지속된 한국에서의 ‘조셉스 코리아’를 마치고, 미얀마를 방문해 ‘조셉스 버마’를 선보이며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법송 스님은

대전 영선사에서 수행 중인 사찰음식 지도 법사다. 현재 동국대학교와 사찰음식문화체험관, 향적세계에서 강의를 하며 사찰음식의 의미와 맛을 전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김소희 셰프, 호주의 조셉 리저우드 셰프 등 스님을 찾아 사찰음식을 배우고자 하는 셰프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 RYU HYUN JUNE, 2017 lamain

스님들은 다양한 야생 재료를 활용하고 갖가지 장아찌를 담가 맛을 낸다. 산중불교로 발달해 식재료가 다소 한정적이었지만, 야생에서 구할 수 있는 향 좋은 버섯과 제피 등의 재료를 말려 천연조미료로 만들어 사용하면서 사찰의 고유한 음식문화를 발전시켰다. 또 사찰마다 특색 있는 장을 담그고 오랜 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장아찌를 만들며 그 자체를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더 섬세한 요리의 재료로 쓰기도 했다.


사찰의 조리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맛을 내는 비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장’에 이른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천천히 함께 변화해가는 장 담그기. 커다란 장독 안에서 계절과 세월이 함께 익어가는 셈이다. 요즘엔 가정이나 음식점 등많은 곳에서 시판된 장을 사서 활용하지만, 일부 사찰에서는 여전히 자급자족 방식으로 장 담그기를 고수하고 있다.

이곳 영선사에도 법송 스님의 간장과 된장이 익어간다.



ⓒ RYU HYUN JUNE, 2017 lamain


“장도 사람을 닮아. 만드는 사람이 엄하고 굳세면 장도 깔끔하고 강한 맛이 나고, 부드럽고 나긋한 사람이 만들면 순하고 어디에나 잘 어우러지는 장 맛이 나. 익어가면서도 맛이 달라지지. 처음엔 짜고 제 성격이 너무 강하다가 오래 숙성시키면 나이가 드는 것처럼 둥글어지고, 깊은 맛이 나고…” 법송 스님은 조셉 셰프에게 메주를 갓 띄운 장부터 곰삭아 구수한 된장까지 다양한 장을 맛 보이고, 봄나물을 요리할 간장과 된장을 한 스푼씩 작은 도자기 그릇에 퍼담았다.

사찰음식의 양념은 장과 소금이 기본이다. 봄 향기가 물씬 풍기는 머위, 냉이, 미나리와 쑥도 이런 기본 양념으로 가볍게 무쳐냈다. ‘소스로 요리를 뒤바꾸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가진 힘을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며 조셉 셰프가 눈을 반짝였다.


살짝 데치고 장으로 간을 하는 스님의 손길에는 기계적인 ‘계량’이 없다. “얼마나 말랐는지, 수분은 또 얼마나 많은지, 오늘 쓴맛이 강한지 약한지… 재료가 매일 달라지니까 너무 틀에 얽매이면 오히려 맛이 이상해져.” 법송 스님의 이야기처럼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재료와 자신의 합을 맞춤으로써 비로소 본래의 의미를 찾는 것이 사찰음식의 시작이다.




 

ⓒ RYU HYUN JUNE, PARK IN HO 2017 lamain

연근간장조림

연근은 기름을 둘러 센 불에서 앞뒤를 익히고, 간장과 물을 1 대 3 비율로 옅게 희석해 부은 뒤 졸인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사각사각한 연근이 짭짤한 간장양념과 어우러져 밥도둑 반찬이 완성된다.


미나리무침

미나리는 차가운 성질이 있으므로 물에 데친 뒤 간장과 된장, 참기름으로 가볍게 양념했다. 된장은 쓴맛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힘이 있어 미나리의 상태에 따라 된장과 간장의 비율을 조정하면 된다.


쑥콩된장국

쑥과 콩가루를 듬뿍 넣고 스님의 된장으로 슴슴하게 간을 했다. 자작한 국물 속 뭉근하게 익은 쑥 건더기가 부드럽고 고소하게 입안을 채운다



 


ⓒ RYU HYUN JUNE, PARK IN HO 2017 lamain

냉이간장무침

들바람을 맞고 자라 생명력 강한 냉이를 끓는 물에 데친 뒤, 스님이 하나하나 돌보며 숙성시킨 간장과 직접 짠 참기름으로 살살 무쳐냈다. 간장의 감칠맛과 짭조름함이 향긋한 냉이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머위된장무침

신선한 머위는 생으로 먹어도 좋지만, 스님이 준비한 머위는 쌉쌀한 맛이 강했다. 끓는 물에 재빨리 넣었다 꺼내 살짝 숨을 죽이고 된장으로 간을 하면 쓴맛은 기분 좋을 만큼 둥글어지고, 구수한 맛이 살아난다.



 

“법송 스님과 시간을 보내며 ‘양념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배운 서양 요리는 다양한 재료에 수많은 기법을 더합니다. 맛있는 소스를 만들고, 완벽한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사찰음식을 배우며 조금 다르게 느낀 점은, 사찰음식은 중심이 되는 재료 본래의 힘을 살리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가짐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죠.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장을 이용해 최소한의 터치로 봄나물을 무쳐내는 것을 보며, 소스란 원재료의 맛을 충실히 살리는 ‘의도’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얇게 썰어 30분 소금물에 담가 요리하는 감자처럼 많은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이 색다른 소스를 개발해 감자를 덮어버리는 것보다 더 나았죠. 이런 판단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한국 땅에서 난 생명력 가득한 재료들의 성격과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재료를 잘 골라 전시(showcase)한다고 할까요. 전반적으로 절제의 마음을 담아 사찰음식에서 얻은 영감을 표현해보았습니다. 소금만을 이용해 발효시킨 당근, 그리고 취나물과 매실청의 어울림처럼 단순하지만 꾸밈없이 솔직한 맛이 제가 본 사찰음식의 모습입니다.”



ⓒ RYU HYUN JUNE, PARK IN HO 2017 lamain


봄 두릅과 생감자


살짝 데친 신선한 봄 두릅과 강원도의 한 농장에서 직접 받은 신선한 자색 생감자를 얇게 썰어 소금물에 30분 담근 뒤 염소우유 무스 위에 올렸다. 자색감자는 도라지와 비슷한 쌉싸래함이 매력적인데, 감자를 익히면 그 맛이 약해지기 때문에 생감자를 사용한 것이 특징. 아삭하면서도 달콤쌉싸름한 자색감자와 향긋한 두릅이 염소우유 무스와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 RYU HYUN JUNE, PARK IN HO 2017 lamain

매실 그라니따와 취나물 젤리


취나물무침에서 영감을 얻어 디저트로 표현한 디시. 새콤달콤한 매실청을 얼려 사각사각한 그라니따를 만들고, 그 위에 쌉싸름한 취나물 젤리를 올렸다. 곁들인 것은 초록 딸기와 김 파우더. 개성 가득한 재료들이 만나 독특하면서도 순수한 맛을 만들어낸다.



 

ⓒ RYU HYUN JUNE, PARK IN HO 2017 lamain

당근김치와 돼지고기


2% 소금물에서 3일 동안 저온 발효시킨 당근김치를 구운 돼지고기 위에 올렸다. 당근김치의 아삭함 뒤로 이어지는 새콤한 맛이 매력적이다. 함께 곁들인 반건조 곶감의 쫄깃한 식감과 달콤함이 재미를 더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