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le Kitchen

청계천 광장에서 맛있는 음식 축제가 벌어지는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버려지는 농산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파티’란다. 먹을 수있음에도 불구하고 못생기거나 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지는 재료들을 요리해 시민들과 나누는 축제, 요리가무(Disco Soup) 파티에서 활동하는 차현재 요리사를 만났다.
요리가무는 식재료의 낭비에 대한 문제 의식을 파티 형식으로 즐겁게 풀어냈다. 요리사부터 기획자, 디자이너, 관심 있는 누구나 함께 모여 버려지는 재료들을 직접 손질하고, 요리하고, 나누어 먹는다. 지난 2013 년부터 매년 꾸준히 청계천 광장, 킨텍스, 가락시장 등 많은 사람을 만날수 있는 도시 가운데에서 진행했다. 현장에서 갓 만든 음식은 맛있었고,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이 재료들을 왜 버려? 이런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겨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 의도였죠. 정말 많은 청년이 함께 요리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민들에게 음식을 나눠드렸어요. 지금껏 요리가무로 500kg이 넘는 농산물을 사용했는데, 무료로 2500인분 이상을 만든 셈이죠. 그만큼 저희는 음식이 직접 말을 하게 하고 싶었어요. 겉모습이 못생겼다고 버려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요. 다소 규격에 맞지 않는 외형 때문에 혹은 작황의 이유로 유통조차 되지 않거나 못하는 채소를 전시해두면 많은 시민이 오셔서 음식을 맛보고, 이런 농산물을 시각적으로 접하지요. 저는 그중 한 분이라도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인지하셨다면 큰성과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요리가무’라는 이름으로 이행사를 6년간 진행해왔지만요. 제가 이런 캠페인 형식의 ‘음식 운동’ 을 하는 이유는 정답을 모두에게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주한 식탁의 모습을 알자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다음 세대에 어떻게 더 나은 모습으로 전달해줄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못난이 채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당대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서 '낯섦'과 '당연함'은 의외로 경계가 모호하다. 대형 마트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구부정한 가지도 평소에 먹던 가지였고, 크기가 들쭉날쭉한 뿌리채소도 그저 소쿠리에 담겨 함께 팔리는 뿌리채소였다. 하지만 농업기술 발전과 유통 구조의 개선은 소품종 대량생산 농장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규격화되고 보기 좋은, 그러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상품들을 시장에 쏟아냈다. 이제는 아주 작거나 구부러진, 혹은 색이 보랏빛으로 균일하게 착색되지 않은 가지를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 모든 일은 소비자에게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없는, 발전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비규격 상품을 애초에 소외시키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고.
“전 세계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음식의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어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있고요.
못생겼다고 재료가 버려지고, 때론 농사가 잘되어 작황이 너무 좋아 출하 가격이 낮다고 수확도 하지 않은 채 밭이 버려지죠. 수확하는 비용도 나오지 않아 차라리 안 팔겠다고 애써 기른 작물을 눈물 머금고 갈아 엎는데 지구 한쪽에선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이 아이러니해요.
요리사는 1차 생산자에게 소비자이지만, 식당 손님에겐 생산자가 되기도 해요. 때문에 양면을 지닌 직업인으로서 이러한 세계적 사회 문제와 빈부 격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는 자리엔 반드시 요리사가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버려지는 식재료, 못난이 채소들에 대한 관심은 땅과 농사로까지 이어졌다. 차현재 요리사가 우연처럼 도시농업을 시작하게 된 지도 어언 6년. 하지만 처음부터 농사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리학도로 수업을 듣던 시절, 실무 경험을 쌓고 싶어 레스토랑으로 출근했는데 흔히 쓰이던 재료의 원산지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방에서 이 많은 냉동새우가 쓰일 텐데… 대부분 태국산이더라고요. 그 모든 수요를 맞추는 공급이 어떻게 가능할까 호기심에 공부하다 보니 음식학, 즉 Food Studies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공부를 할수록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 게도움이 될 것 같아 ‘All about Food’라는 음식 포럼 모임을 개설해 다양한 분야의 분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자연스럽게 ‘도시농업’, ‘도시양봉’ 신청하는 곳을 접하게 되었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생태계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작게나마 시작된 거죠.”
그가 처음 심었던 작물은 가을당근, 한 달이면 수확 가능한 래디시, 그리고 허브였다. 주방에서 칼을 잡고 요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마음으로, 삽을 쥐고 흙을 헤쳐 첫 당근을 수확해 맛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직접 재배해서 그 소중함이 배가되었을까, 당근에서 달큰하고 부드러운 느낌과 생강처럼 매운 향, 은근한 흙내음 등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복합적인 맛과 향이 풍부하게 느껴졌단다. 그는 이시기를 기점으로 ‘Soil to Table(흙에서 식탁으로)’이라는 메시지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요리사가 농사를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농사는 당연히 농부가 해야 한다는 의견. 하지만 농사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요리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농부는 요리사에게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 작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 한편 주방에서부터 요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농장에서부터 요리를 시작할 수도 있다. 농부와 협업해 크기, 맛, 향을 요리사의 의도대로 조절해가며 작물을 키우는 시도도 가능하다.
차현재 요리사와 함께 찾은 논산 꽃비원은 비가 촉촉하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지난 2014년, 서울 혜화에서 열리는 장터 마르쉐에 방문했다가 ‘꽃비원’ 부스에서 정광하, 오남도 농부를 만나 단숨에 매료된 데에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논산으로 버스를 타고 둘러둘러 찾아갔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진짜 농사일'을 경험했다.
“고구마 캐고, 깨 털고, 땅콩도 수확하고… 일하던 중 농부님께서 쉬면서 하라고 하셨는데 허리를 펴는 순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저 멀리 지평선으로 노을이 지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그 이후 시간날 때마다 자주 방문하려고 해요. 땅에서 작물이 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각각의 작물이 지니는 맛과 향이 무엇인지 원론적으로 생각해볼수 있어서 맛있는 상태에 대해 기준이 생겨나요. 그리고 그 특징들을 강조하거나 요리에 적절하게 활용하기도 좋고요. 또 갑작스레 재료값이 오를 때 그냥 불만만 가지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 상황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생산자(농부)와의 연대가 깊어지고 생태계에 대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고,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도 하게 되고 새로운 메뉴를 구상할 때 생각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져요.”
Umami soup

버려질 운명이었음이 농담인 듯 우아한 감칠맛이 혀를 감싼다.
허름한 겉모습 속에 숨겨진 정숙한 아름다움.
INGREDIENTS
훈연 재료
버려지는 채소 부위(껍질, 뿌리 등) - 당근, 우엉, 무 껍질, 옥수수 수염 및 껍질
냉침 재료
물 1L, 건표고버섯 3개, 다시마 작은 1조각
수프 건더기
돼지감자 200g, 가을당근 200g, 고구마 100g, 무 100g, 배추 100g, 완두콩
허브오일
타임 · 세이지 · 펜넬 1줄기씩, 포도씨유 500ml
그 외 재료
간장, 소금, 레몬즙
RECIPE
모아둔 채소 껍질과 뿌리, 판매하지 못한 채소들을 얇게 저며 말린 후 훈연한다.
건표고와 다시마를 식수에 하룻밤 담가 우린다.
허브는 향이 없는 포도씨유에 약 90℃ 정도로 우려낸 뒤 블렌더에 곱게 간 후 커피 필터에 천천히 내려 허브오일을 만든다.
②의 육수에 ①의 훈연한 채소를 넣고 약불에 30분 정도 천천히 끓인다. 불을 끄고 30℃ 아래로 천천히 상온에 식혀 육수를 완성한다.
완성된 육수(냉장고에 하루 이상 숙성하면 더욱 맛이 좋다)는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돼지감자, 가을당근, 고구마 등 농장에서 수확한 계절 채소를 넣어 부드럽게 끓여 수프를 완성한다.
그릇에 건더기를 담고 스모킹건을 이용해 육수에 훈연한 뒤 부어준다.
허브오일을 몇 방울 올리고 레몬즙을 조금 짜 넣어 맛을 풍부하게 한다.
Root Vegetables

알록달록 예쁜 과일도, 푸르고 싱그러운 잎채소도 아니지만 뿌리채소는 땅의 맛을 제 몸 가득 품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대지의 맛을 표현했다.
INGREDIENTS
가을당근 4개, 순무 1개, 비트 1개, 타임 약간, 펜넬잎 약간, 펜넬씨드 1Ts, 대파 1개, 조선호박 속 부분 2개 분량, 버터 1Ts, 생크림 200ml, 설탕 1Ts, 꿀 3Ts, 올리브유 적당량, 소금 적당량
RECIPE
농장에서 수확한 당근 2개와 순무는 염도 1%의 물에 최소 일주일 이상 담가 발효시킨다.
손가락만 한 당근 2개는 올리브유, 타임과 함께 쿠킹포일에 감싸 180℃로 예열한 오븐에 30분간 로스팅한다.
비트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올리브유와 소금으로 겉을 문지른 뒤 타임과 함께 쿠킹포일에 감싸 180℃로 예열한 오븐에 30분간 로스팅한다. 비트의 크기에 따라 로스팅 시간은 적절히 가감한다.
속까지 부드럽게 익은 비트는 블렌더에 갈면서 꿀과 올리브유(약 5Ts 내외) 원하는 농도와 단맛을 낸다.
예열한 팬에 버터를 녹이고 대파를 넣어 단맛이 날때까지 볶다가 잘 쓰지 않는 호박 속 부분을 함께 넣어 볶는다.
⑤의 재료가 섞여 부드럽게 되면 펜넬잎을 넣고 생크림을 자작하게 넣어 뭉근히 끓인 후 블렌더에 곱게 간다.
펜넬씨드는 달군 팬에 올려 볶듯이 토스트한 뒤 설탕을 뿌려 남은 잔열로 버무린다.
접시에 ④의 비트 퓌레와 ⑤의 대파호박 퓌레를 올리고 달콤하게 익은 당근을 올린다.
1주일 이상 발효한 당근과 순무를 올리고 펜넬잎, 캐러멜 펜넬씨드를 뿌려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