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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6차 대멸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학자들은 약 100만 종의 생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였으며 멸종 진행 속도가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인류는 머지않아 식량난을 겪게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에 전지구적 차원에서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는 요즘이다.

매달 둘째 주 일요일이면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도 그 움직임 중 하나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마르쉐@혜화가 열렸던 지난 10일. 이 땅에서 자라나고 있는 토종 씨앗을 더 많은 현대인들이 맛보고 기억함으로써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농부 시장을 기획한 마르쉐 친구들 팀의 이보은 기획자를 만났다.


▲ 11월 10일 열린 마르쉐 농부시장@혜화

Q: 농부시장 마르쉐@는 어떤 시장인가.


마르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이다. 땅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는 생산자, 농부부터 요리사, 수공예, 그리고 농작물을 구매하는 소비자, 자원활동가, 시민들까지.. 그 모두가 대화의 주인공이고 주체다. 그리고 그 모든 주체들이 할 수 있는 경험은 의미 있다. 도심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생산 과정부터 농작물의 성격까지 폭넓은 주제로 대화하고 판매·소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마르쉐@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처음 보는 씨앗에 대해 대화하고 고민하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 ⓒMarche

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매번 달라지는 주제에 맞게 농부 워크숍, 농부의 맛 워크숍, 제철 공연 등 볼거리도 함께한다. 이번 마르쉐@혜화의 주제는 ‘토종씨앗’이다. 워크숍에서는 마르쉐@ 농부의 농사와 먹거리, 그리고 농가가 이어가는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직접 맛보며 낯선 토종 씨앗을 알아갈 수 있다. 오늘 농부의 맛 워크숍을 사전 신청한 분들에게는 풀풀농장의 토종 쌀 노동지로 만든 에일을 시음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Q; 마르쉐@를 처음 기획하게 된 그 배경이 궁금하다.


이 땅에 혁신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생각에서 시작된 기획은 아니었다. 단순하고도 소박한 질문,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고 먹자’는 것이 그 단초였다.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누가, 어떠한 재배 방식으로 길렀는지를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내 손에 음식이 오기까지의 그 과정을 ‘모르고 먹는’ 경우가 만연하다.

▲ 소비자와 농작물에 대해 대화하는 농부

단적인 예로 아프리카에서는 물 부족 현상으로 인해 먹거리가 부족한 상황부터 코코아 농장과 커피 농장에서 발생하는 아동노동 착취까지 다양한 사회문제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국가들은 그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우리의 소비가 낳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커피 원두가 어떤 생산·공정 과정을 거쳐 우리 손에 도달하는지 전 과정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우리 사회가 알고 먹는다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많은 것들이 숨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에서 시작했다.


‘알고 먹는 것’은 농업사회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마르쉐@를 기획하기 이전부터 이미 농업사회에 부는 위기는 심각했다. 특히 계속되는 자연파괴와 기후변화가 낳은 종의 획일성이 문제였다. 이미 무수한 종의 작물들은 사라졌으며 그 가운데 상품성 있고 사회가 경쟁력 있다고 인정한 일부의 종자들만 획일적으로 생산, 소비되고 있었다. 우리는 농작물 소비의 주체인 소비자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토종씨앗들을 직접 맛보고 그 맛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이 순환구조가 반복된다면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되는 많은 자연들이 공존하고 숨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기존 직거래 장터와 마르쉐@,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직거래 방식의 장터는 꽤 오랜 역사를 지닌다. 과거 5일 장은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가 직접 장터에 나가 자신의 것을 판매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확산됨에 따라 점점 장돌림, 유통 전문가들이 판매자로 등장했고 농부들이 판매 과정의 핵심주체에서 밀려났다. 그 뒤로 원주나 안성의 새벽시장처럼 농부들이 참여 가능한 형태의 소규모 농산물 직거래 장터는 지방 도시에서 볼 수 있었지만 수도권에서는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서울에서 열린 농부 시장의 시초는 마르쉐@다. 대량 재배되어 일괄적으로 유통판매되는 방식이 만연했던 수도권에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이곳에 참가하는 출점자들은 다품종 소량 재배를 하는 분들이다. 300평 남짓한 땅에서 200종 이상의 품종을 조금씩 길러 팔다 보니 모든 수확물들이 귀하다. 씨앗부터 잎, 줄기, 뿌리까지 그 모든 것을 내놓고 먹는 방식을 고민한다. 그 과정들이 모여 지금의 마르쉐@가 되었다. 기존에 못 먹는다고 생각되었던 풀, ‘소리쟁이’의 조리법을 출점 요리사들과 함께 연구하거나 작은 텃밭에서 자라는 고수도 알뜰히 뿌리부터 꽃까지 상품으로 판매하는 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최근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농부 시장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호조라고 생각한다. 과거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에서 무와 배추들에 대해 판매자에게 물을 수 있는 말이 “이거 얼마예요?”였다면 마르쉐@에서는 다양한 말이 오고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쥐꼬리 무’처럼 달고 알싸한 맛이 매력적이지만 너무 작아 시장에서 상품으로 판매되지 않던 무를 내놓은 농부에게 소비자는 “이건 무슨 무에요?”라는 질문으로 다가간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 소비자와 농작물에 대해 대화하는 농부


Q: 매달마다 열리는 시장의 주제가 다르다.


매년 진행되는 농부시장에서는 종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계절에 따라 진행된다. 3월이 되면 봄바람과 함께 ‘씨앗장’이 열린다. 각 농장이 이어가고 있는 씨앗들을 농부들 간 교환하거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등 씨앗을 공유한다. 씨앗을 널리 알리고 퍼뜨리고자 함이 그 취지다. 이렇게 나눈 씨앗들은 여러 농장에서 토지와 기후에 맞게 1년 동안 길러진다. 그 결과물을 11월에 열리는 ‘토종’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오늘 열린 토종장에서는 50종 이상의 쌀과 10종 이상의 수수와 콩들을 맛볼 수 있다.

▲ 토종쌀 약 50종을 선보인 우보농장

또한 4월에 열리는 ‘풀’장과 7월의 ‘햇밀’장도 의미가 크다. ‘풀’은 기존의 시장에서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풀이 아니어도 4월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채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시장에 출점하는 농장 가운데 시설재배농가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4월이 되면 내다 팔 수 있는 작물이 ‘풀’ 뿐이다. ‘풀’을 상품화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풀이 정말 맛있고 가능성이 많은 미식 자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7월에는 소규모 밀농부들이 앉은뱅이 밀, 붉은밀, 금강밀, 검정밀, 데메타밀, 조경밀 등 다양한 밀들을 갓 수확하여 시장에 들고 오는데 햇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에 집중할 수 있어 흥미롭다.


결국 핵심은 ‘씨앗을 보존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땅에서 이어져온 씨앗들, 그리고 앞으로 이어가야 할 씨앗들을 너무 많이 놓쳐왔다. 하지만 그 씨앗들이 그동안 살아남은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찾지 않음에도 그 씨앗들을 계속 심고 보존한 농부들이 있다는 것은 그 씨앗만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씨앗들의 특별함을 더 늦기 전에 많은 이들이 알고 기억하고 시장에서 찾아줘야 한다.


Q: 출점하는 농부들에게 마르쉐@는 어떤 의미인가.


마르쉐@에 출점하는 농부들은 소규모 농가의 귀촌 농부, 도시 근교의 농부, 청년 농부로 그 양상이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농업 구조에서 이어가기 어려운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분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게 마르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농부들이 직접 소비자와 맞닥뜨림으로써 농가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처음부터 농부들이 내가 누구이며, 나의 농가에서 재배한 작물이 어떤 농법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어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는 것인지를 언어화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대화할 수 있는 시장, 마르쉐@에서 자신의 농가를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 브랜드를 형성하게 된다.


둘째, 소비자와의 교류를 통해 자생력을 얻을 수 있다. 소비자에게 처음 선보이는 작물들 가운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작물이 무엇인지부터 소비자로부터 새로운 농작물 활용법을 듣는 것까지 많은 대화들이 성장하는 토대가 된다. 예를 들어 ‘찬우물 농장’이 시장에 처음 출점했을 당시에는 몇 가지의 농가에서 재배된 채소가 전부였다. 텃밭에서 몇 송이 작게 키웠던 백일홍과 천일홍 꽃들이 너무 예뻐 이를 베다 팔았는데 시장 반응이 좋았었다. 그 뒤로 찬우물 농가는 매달 채소뿐 아니라 꽃도 함께 팔고 있다.

▲ 꽃을 채소와 함께 팔고 있는 찬우물 농장


Q: 마르쉐@의 친환경적인 운영방식이 인상적이다.


기획 초반부터 마르쉐@가 지구를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배우고 습관화하는 첫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즐겁게 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시장에서 수북이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마르쉐@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출점자들이 농장에서부터 가져오는 개인 물품들,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내놓는 제품들에서 분리수거되지 않는 일회용품의 사용을 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오고 있다. 물론 무거운 유리병보다 가벼운 플라스틱이, 갓 딴 작물의 이슬에 쉽게 젖는 종이보다 비닐이 판매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각자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 외에도 현수막처럼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홍보물 대신 철판에 글을 쓰는 것도 고수해오고 있다.

▲ 친환경적인 운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농부시장

이렇게 처음부터 친환경적인 운영방식을 고집한 것도 있지만 회차를 거듭해오면서 추가된 실천행동도 많다. 개인 식기와 장바구니를 들고 오신 소비자분들에게 덤을 드리는 등 작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이 아이디어의 출발은 출점자들의 ‘대화’였다. 시장에 출점하는 농부 등의 주체가 시장에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다 나온 소박한 발상이었다. 바로 그날 시장에서 텀블러를 가져온 분들에게 가득 음료를 드린다고 홍보를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Q: 농부시장 마르쉐@가 추구하는 가치, 지향점이 있다면.


이곳 마르쉐@는 우선 출점자들과 농부시장 기획자들에게 학교다. 토종씨앗을 지키려는 신념으로 농부로서 어려운 길을 걷고 있던 농부들에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경험의 장이 된다. 또한 기획자들에게 이곳은 일터이자, 토종 씨앗들을 지켜나갈 수 있는 기획력을 발전시키는 배움터다. 우리 땅 먹거리의 지속가능성을 보존하자는 공동목표 하에 씨앗의 가치를 선보이는 농부들, 소비자와 농부들을 연결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기획팀, 요리사들, 수공예가들은 마르쉐@를 통해 쌓은 인연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 마르쉐@는 현대인들의 식문화, 더 나아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에 지향점을 둔다. 하지만 오늘 열린 마르쉐@혜화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씨앗들을 만나보는 뜻깊은 경험을 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마르쉐@에 많은 분들이 와주시면서 농부와 소비자의 ‘자유로운 대화’가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1-2주에 한 번씩 같은 장소에서 꾸준히 만나는 시장, 채소 시장을 합정과 성수에서 함께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소비자들과 농부가 일상에서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거점들을 천천히 마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다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꿈꾼다.




다이닝미디어아시아 김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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